총 152페이지

66페이지 본문시작

로 상주국이 된 문양공(文襄公) 오연총(吳延寵, 1055∼1116)의 증손자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찬성사
(贊成事-정2품)에 오른 문경공(文敬公) 오반(吳潘,
“찬성공”
)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뒤 낙향하여 후진양성에 힘쓴 양한재(養閒齋) 오성식(吳成式)이며 어머니는 이(李)씨이다. 그의 선대
는 경기도 양주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부(溥), 엄(淹), 건(
), 방우(邦佑) 등 네 아들 중 셋째이
며 호가 신창(新昌)이다. 그의 호에 따라 후손들은‘신창공파’
로 칭하기도 한다. 무과를 거쳐 부정(副
正-종3품)을 지냈다. 부인은 풍양조씨이다.>
족보에 의하면 오건의 중형인 오엄의 부인이 해주최씨 최단(崔鄲)의 딸이다. 최단은 고려말~조선
초의 무신으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참여한 회군공신이자 개국공신(3등)이 된 인물이다. 형의 장
인을 기준으로 보면 오건의 생존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고려말~조선초로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1350년을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3대 차이인 증조부 오연총(1055~1116)과 300년이나 차이가 난다.
거꾸로 보면, 현재로부터 15대조이면 대략 30년으로 보아 450년 전이다. 서기 1550년 정도이고 빨
라도 1500년경이다. 조선이 들어선 1392년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1930년으로부터 540년 전, 1대가
45년씩이 된다. 뭔가 오류가 있다. 따라서 그를 조선 초의 인물로 보고, 선대보다는 후대를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또 한 가지는, 비문에 따르면 그가 신창골에 부임하여 해서지역 방위를 담당했다고 하였는데 해서
(海西)는 황해도 지방이고 충청 지방은 호서(湖西)이니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호서라 할 것을 착각하
여 해서로 했으리라 본다. 그의 호가 신창인 것으로 보아 신창에 들어와 산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그
의 묘는 도고면 농은리에 있었는데 금년
(2009년) 초에 도산리로 옮겨 모셨다.
오건은 외아들 억령(億齡)을 두었고 오억령
도 외아들 윤(綸)을 두었으며 오윤 또한 외아
들 시준(時俊)을 두었다. 그 뒤 오시준이 섬
(暹), 담(曇), 정(晸) 등 세 아들을 두면서부터
후손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고 도고 지역을
중심으로 선장, 신창 지역까지 퍼지면서 오
늘에 이르고 있다.
-오건의 묘-
66
아산입향조 |

6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