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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57] 효자 최익대 <崔翼大>
손가락 깨물어 어머니 병환 낫게 한 효자
조선 후기의 효자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참봉을 지낸 최덕영(崔悳榮)의 아들이
며 자는 한경(漢慶)이고 호는 송암(松庵)이다. 그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럽고 덕행이
있었다. 어머니의 병환에 제단을 만들고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이 대신하여 병을 앓게 해
달라고 빌었다. 병환이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넣어 회생시켰다. 또한 어
머니가 오리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갑자기 새매가 오리를 잡아다가 땅에 떨어뜨리므
로 어머니에게 드려서 효험을 얻었다. 고을과 도(충청도)의 사람들이 하늘도 그의 효심
을 안다 하며 칭송하고 나라에서 상을 내려 주도록 추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관부로 부
터 효자로 상을 받았다. 또한 그가 살고 있는 마을 마낭동(만향골)을 효자리(孝子里)라
고쳐 부르게 하였으니, 그곳이 바로 지금의 도고면 효자리이다.
[58] 효자 하유성 <河有成>
두 손가락 피내어 입어 넣어드린 효행
조선시대의 효자이다. 그는 신창현(선장면 대흥리)의 광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가 병을 앓을 때 몇 달 동안 옷을 벗지 않고 곁을 지키며 간호했다. 아버지가 위중해진 끝
에 혼절하자 가운데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드려 깨어나게 했다. 이어서 다시 다섯째 손
가락의 피를 내어 입에 넣어드렸더니 닷새를 더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지극한 예로 장사
를 지낸 뒤에 삼년상을 극진히 모셨다. 하루에 세 번씩 아버지의 묘에 가서 성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비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안 가는 날이 없었고 눈물로 근처의 풀이 죽을
정도였다.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서 마침내 효자 정려(旌閭)가 세워졌고 그는 공조
참판(종2품)에 추증되었다. 정려는 선장면 대흥리 어촌 마을에 세워졌는데 지금은 전하
지 않지만 정문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59] 효자 허교 <許喬>
손가락 끊어 피로써 병환 낫게 한 효성
조선 시대의 효자로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집이 가난하
여 나물과 좁쌀도 먹기 어려웠으나 부모 봉양에 힘을 다하여 언제나 좋은 음식을 마련하
여 부모에게 드렸다. 어머니가 몸져눕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어 곧 치유시켰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고을 사람들이 그의 효행을 크게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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