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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서원유허비
노은서원유허비명병서
하늘은 높고 땅은 아래니 만물이 각각 달리 산재하여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은 그
얼굴이같지않은것과같다.
충의가 탁월히 다른 것은 만(萬)사람의 말이 하나 같고 천년을 지나도 하루 같은 것은 이
것이 군신 간에 크게 나누어 진 것에 말미암는 것이니 실로 하늘의 경륜과 땅의 의로움이
만고를 뻗쳐도 가히 바꾸지 못할지라. 은나라 주(紂)의 악함은 하늘이 이를 폐하였고 주나
라 무왕의 군사의 덕이 팔백년 동안 하늘이 응하고 사람들이 순응하며 폭력을 없애고 난리
를구하였다.
묵태씨(백이숙제)는 홀로 그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이 부끄럽다 하여 굶어 죽으며 원망함이
없었고, 명의 문황승은 불사의 운이 비연 상기의 참소를 당하였다. 태조의 자가 건문의 위
묘를 개혁하여 건립한고로 시조(市朝)가 그름을 고치지 아니하였다. 사람의 역성(易姓)을 돕
는 것은 바야흐로 제 군자의 충성을 다하여 적족(赤族)을 섬김바라 후회함이 없는 바는 어쩜
인가. 그 마음이 대의에 매인 바요 수명(數命)을 바꾸고자 한 것은 아니고 그 근본을 지키고
자 하는 것이다. 동방의 육신(六臣)의 충성이 또한 이와같을 따름이다. 육충신은 의를 취한
것은 제선생(諸先生)에 자세히 서술하고 이로써 더할 필요가 없다. 홍주 노은서원 노량진의
민절원 영월의 창절원 대구의 낙빈원 창녕의 물계원 공주의 달전사다. 성선생의 제향한 곳
이라. 선생은 이 노은동에서 태어났고 선대의 묘소도 그 곁에 잇다. 신위께서 타 사당보다
편안한 바요 법도로 행한바라 오호라 무진년에 폐철된(1868년 서원철폐) 이후로 육충신의 신
주를 모시는 일을 할 곳이 없더니 사류(유림)가 정성으로 하지 않은 날이 없이 하여 지금 칠
십여 차례 제항에 이르렀다. 천도(天道)가 순환하여 홍주 인사가 유적보전회를 설치하여 군
수 하준환 충렬공(하위지)의 방계 후예로 극력 힘을 써서 작년 가을에 회장 이장로 회원 김열
제 제인이 협의 발흥하고 금전 천원을 각출하여 전토(田土) 약간을 매입하여 선대 위토(位土)
로 하고 병자년에 6월 7일 즉 선생이 살신성인한지 칠주 갑이니 육충신 사당의 위태를 묻
은 곳에 단을 세우고 분행하니 군수 및 사람 삼십여 인이 또 비를 무릅쓰고 설단(設壇) 고유
제를 지내고 성선생 고택에 늙은 오동나무 옆에 또한 담장을 쌓고 이를 보호하니 여양 민
66_홍성의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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