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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에 군대에 간 조성연은 규율이 세다는 육군본부 의장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의장



대에 선발된 것은 180cm의 큰 키와 준수한 외모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조성연이 키가 큰


것은집안내력이기도하다.아버님도키가크셨고동생과조카들도큰키를가졌다.국빈
,

이 방문했을 때의 사열이나 도열, 국립묘지 행사, 중앙청 행사, 청와대행사 등에 자주 갔


다.동작을절도있게하여박수를많이받았다.의장대에서는총을한손으로돌리는동작



을 연습하고 총을 하늘로 던졌다가 받아내는 등 사열에 필요한 동작을 실수없이 연출할


수있도록엄청나게연습을해야했다.연습이고되고힘들었지만,제대무렵에는한손으


로총을1500번이상돌릴수있을정도로숙련된경지에올랐다.




오이로살림이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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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물려준살림이아버님대에조금늘어났다.조성연은자녀가넷이라자녀들을
가르치느라큰돈을모을새가없었다.그래도금강변의좋은토양에오이를심어약2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경제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1990년 경지정리 후 1991년부터 오이
농사를시작했다.오이는하우스에재배해음력1월부터출하하였는데.쌀농사보다수익
이높았다.보통1월부터6월까지오이재배를했고,수확후그자리에벼를키웠다.1년내
내 쉴 수 없었던 농부의 생활이었다. 오이재배로 자녀들을 모두 공부시켰고, 자녀들은 현
재모두출가하였다.
임천향교의장의로추천받아유림에입문하다.
풍양조씨 세거지인 임천에서 종사일을 맡아보던 조성연이 유림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매
우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20대조 할아버지 묘가 서원 근처에 있어서 시제에 많이 참석했
고,동곡서원에도자주갔었다.그를눈여겨본어른들이추천해서조성연은67세부터임천
향교장의,성균관유도회임천지부의지부장을2년동안맡아했다.그이후에는임천향교
전교를2년동안역임했는데,그러한과정을거치다보니유림에대한관심이더많아졌다.
유림의본고장임천
부여군에서 선현들을 제향하는 곳은 약 20여 곳이다. 그 가운데 임천지역은 9개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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