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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병풍처럼둘러있는기왓말에서나고자라다.



조성연은 풍양조씨로 1946년 1월 21일에 임천면 칠산2리 와종마을에서 태어났다. 와


종은기왓말또는지암말이라고도불렸다.금강변에있으면서용남산이병풍처럼둘러있
,

어서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이전에는 약 120여 호 규모의 꽤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80


여호로줄었다.논농사를많이지었는데오이를재배하는농가가많아오이작목반이운



영되고있다.




풍양조씨의세거지임천,종사를맡아보다.


임천은 풍양 조씨의 세거지이다. 고려 말 신돈을 제거하기 위해 역모를 하다 역으로 몰


린조신(趙愼)이입향한후풍양조씨세거지로서자리잡게되었다.조신은고려후기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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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자 충절인이다. 신돈의 섭정으로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부여 임천에 숨
어 지내면서 이름을 신(愼)으로 바꾸었다. 임천에서는 조신을 회양공 할아버지라고도 많
이부르며,부여군장암면점상리에묘가있다.
조성연이 살고 있는 와종마을에는 그의 8대조가 입향해 풍양 조씨들이 많이 살고 있
다.조성연은종가의일도관여하고있는데,약20대조까지의조상들의제사가있다.조성
연은 17대조와 12대조 조상의 종사일을 맡았고, 서원의 원장으로 바쁘지만, 가을철이 되
면제사에참여하기위해거의매일나가다시피할만큼종사일에열심히참여하고있다.
식구끼리밥은먹고살만했던가정
조성연의아버지는농사를지으셨다.가족들이끼니걱정을하지않을정도의농사규모
였다.다섯살에6.25전쟁이일어났는데,충화면으로피난을간기억이있다.그때는조성
연의다른형제들이아직태어나지않은시기이고어린나이라서업혀서피난을갔다.아주
어린시절이지만그당시의기억가운데그기억만남아있다.
조성연이초등학교를다닐당시학교는약10리밖에있었다.이후조성연이5학년무렵
에는학생들이늘어나서칠산에도학교가생겨서칠산초등학교에서졸업을했다.초등학
교는한반에약60명정도로교실이꽉들어찰정도였다.학교에서는가끔우유를주기도
했으나쌀보다보리가많은도시락을싸가지고가서고추장을반찬으로먹었다.신발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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