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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처음 지어졌고, 경종 1년(1721)에는 임금이 내린 ‘창렬사’란 현판을 받았다. 이곳은 흥



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1979년 12월 19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


22호로지정되었다.
,

삼학사중윤집선생의묘가내산온해리에있는데,윤집선생의말이청나라에서부터윤


집선생의옷만물고부여까지와서거기서모시게되어서것이라는유래가전해진다고하



며,현재는온해리로불리고있다.윤집선생의후손들은죽절리와내산에많이살고있다.




본격적으로유림에입문하다.


아버지를따라일찍향교를다니곤했었고,인연을맺게된유림회류익렬회장덕에유


림 활동을 시작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길배는 60살이 되었을 때 정식으로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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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있는동절사와청일사에서장의일을제안받게된다.장의는총책임자인향교나서원
의전교와원장,총무를돕는사람이다.이길배는총무가제사에올릴물건을사러갈때같
이가고,한자로표기된제수의물목을알기쉽게한글로표시하는일을하였다.
창렬사의운영조직
창렬사는사당과강당,내삼문등의건물이있다.사당은삼학사의제향을올리는곳이
며,강당은본래공부를하고글을쓰는공간인데지금은사무실로사용하고있다.입구앞
에 있는 건물은 멀리서 오는 어른들의 숙식을 대접하던 숙사의 용도로 사용했는데, 지금
은관리인이지내고있다.
창렬사의 운영 조직에는 원장, 총무, 장의가 속해 있다. 향교는 구룡, 내산, 예산, 홍산,
옥산,남면각면마다두명의장의를두고있고,창렬사는각면마다한사람씩장의를둔
다. 사실상 원장은 명예직이고, 실무와 재정을 관리하고 책임을 지는 총무가 실질적인 일
을 이끌어 가고 있다. 지역 사람들을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육이 중심인 향교
와 달리 삼학사 충신을 기리는 제향이 목적이다 보니 제사가 없는 날에는 자유롭게 열어
놓고운영하고있다.
창렬사의 관리는 건물이 낡거나 보수할 곳이 있으면 군에 보고하여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제사는 1년에 한 번 춘향제로 지낸다. 삼충신을 기리기 위해 제향은 누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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