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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소풍을왔던삼학사

남,
초등학교소풍때삼학사를갔던적이있었다.그때본제사지내는모습이아직도기억

에남아있다.언젠가성남에있는남한산성에갔는데그곳에똑같은이름의삼학사가있



어서유심히보았던기억이있다.부여삼학사는윤집,홍익한,오달재선생을모시고,제사


를지낼때도윤집,홍익한,오달재선생의순으로지내고있다.부여와는달리성남에있는


삼학사는홍익한,윤집,오달재로순서로제를모시고있었다.궁금증이생겨알아보니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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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선생이 부여 사람이라는 사실과 윤집 선생 자손들이 살며 제사에도 참여하고 있어, 부
여삼학사에서윤집선생을우선하고있는것이었다.
성실함으로불운을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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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이된이길배는집안아저씨의소개로혼인을하였다.아내가넉넉지못한자기에게
와준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결혼하고 1년 뒤 군대를 갔는데 훈련 중 다치는 사고로 몸
을빠르게움직이지못했는데,그것을본교관이요령을부린다고생각하고머리를구타하
였다.이때이길배는눈을크게다쳐병원생활만하다가중도제대하게되었다.가족들을
먹여살려야하는데,몸이제대로회복되지않아농사일을제대로할수가없어막막했다.
몸이 아픈 그를 대신해 아내가 하우스에서 토마토와 딸기를 키웠다. 이길배는 몸이 조금
나아지자건설업을시작하였고,그의성실함을믿는사람들이일을많이맡겼다.그렇게기
회가있는대로성실히살아온덕에1남4녀자녀들을모두잘키워낼수있었다.
창렬사이야기
창렬사는 삼학사(三學士)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 오달제, 홍익한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 있다. 병자호란 때인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삼
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모욕적인 화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삼학사 세분은 청나라에 잡
혀가게 되었다. 청태종이 직접 이들의 심문에 참가하여 설득과 회유를 하였으나 심한 고
문을견디면서끝까지척화를주장하다가결국중국심양에서처형되었다.그러나청태종
도이들의기개에찬사를아끼지않았으며후대인들도이들을삼학사라고부르고높은충
절과고귀한죽음을기렸다.1717년삼학사인윤집,오달제,홍익한을모시기위해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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