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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아우내중학교 교감으로 재직을 하시게 되었다. 학교 정년퇴직을 하시고 나서는 천안시


,
동남구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소장과문화원부원장,원장까지역임하신이력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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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인생의멘토이자스승이신할아버지와아버지로부터가장영향을받은부분은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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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다. 5살 때 이미 한글을 다 외우고 할아버지께서 천자문을 가르쳐 주셔서 초등학교


입학하기전까지천자문을다떼었다.예전에는초등학교4학년부터는국어책에한문이병
?


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4학년이 되던 해에는 아주 없어져 버려 학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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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배울기회가없었다.
고등학교에입학하면서공부에대한흥미가떨어지기시작하였다.아버지께서는다른공
부는 안 해도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한문 공부는 계속 매진하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
다고등학교2학년때한문교과가생겨그때처음으로학교에서한문을공부하였다.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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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처음 접하는 한문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익혀왔기 때문에 한문은 늘 자연스
럽고 익숙했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께서는 다른 과목들은 공부를 못하는데 한
문은어쩜그리잘하냐면서놀라워했던일화도있다.
한의원을 운영하시는 할아버지 덕에 자연스럽게 한의사를 꿈꾸는 소년이었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 학업에 소홀히 했던 탓이었다. 당시 전국
에 한의대가 경희대 한의대와 전북 익산에 있는 원광대 두 곳 뿐이었는데, 경희대는 떨어지
고 원광대에는 합격을 했었다. 하지만 원광대에는 진학하지 않았고 한의사의 꿈은 접어야
만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원광대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는 하지만 요즘 공부하고 있는 사
주명리학을 보면 그 때 왜 가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아마 그 때 원광대에 가서
한의사가되었어도아마대성하지는못했으리라판단한다.
그 후로 집에서 농사를 좀 짓다 천안시청에서 10여년 정도 근무를 했다. 늦게 시작한 공
무원 생활이었기에 상사들이 거의 후배들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껴
농사를 짓는 편이 낫겠다 싶어 그만두고 다시 농사를 짓게 되었다. 논농사부터 고추농사까
지 해봤고 7, 8년 전부터는 대추 농사를 하고 있다. 농사를 지으며 당구장도 운영을 했는데
풍수지리에 묘한 매력을 느껴 지금까지도 공부를 하고 있고 동남구문화원에서 강의도 하
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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