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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경기도 평택 고덕에서 살았으나 농사철에 물이 부족하여 농사에 어려움이 많아서 물이 풍족
한 인주면 냉정리로 왔다. 삼형제가 서로 다른 시기에 이주해왔고 후손들이 현재까지 살고 있다. 묘
는 냉정리에 있고 한식 차례를 지낸다.
[67] 죽산안씨 안적
| 安績
<1654년(효종5년)~1710(숙종36년)>
조선 후기의 무신이며 죽산안씨(竹山安氏) 24세(世)로 연창위파 아산시 지역, 탕정면 매곡3리 가소
지 마을의 입향조이다. 현재 매곡3리에 13대째 거주하고 있다.
고조는 풍덕군수 등을 역임한 안사흠(安士欽)이고 증조부는 안응홍(安應洪)이며 조부는 사헌부 집
의에 증직된 안대집(安大
)이다. 아버지는 좌승지에 증직된 안정위(安廷
, 1629~1660)이다. 어머
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1625~1685)로 경력을 역임한 이탁(李晫)의 딸이다.
그는 신(紳)과 적(績) 등 2남 중 차남이다. 형 안신은 무과에 급제하고 비변랑, 벽동군수 등을 역임
했다. 안적의 초명은 휘(徽)이고 자는 희숙(熙叔)이다. 1676년(숙종2)에 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 부
정(副正) 등을 역임하고 세 개 고을의 원을 거쳐 경상좌수사(정3품)까지 올랐다. 집안에서는 그를‘수
사공(水使公)’
이라 칭한다. 묘는 가소지 마을 천덕산 줄기에 있으며, 사후에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조부와 부친, 그리고 형 신(紳)은 당진군 정미면 지역에서 살았고 그가 탕정 가소지 마을에 처음으
로 들어와 자리 잡게 된다. 300여 년 전의 일
이지만 정확히 언제, 왜 들어왔는가는 확인되
지 않는다. 부인 전주이씨와의 혼인이 인연일
것으로 보지만 부인의 가계를 알 수 없다.
부인은 이일신(李日新)의 딸 전주이씨(全州
李氏)이며 딸 셋을 낳았다. 후부인 남원양씨
(南原梁氏)는 양익수(梁益壽)의 딸이며 3남 3
녀를 두었으니 이후 후손이 크게 번창한다. 그
의 4남 중 첫째인 상한(相漢)은 전주이씨가 아
들을 두지 못하자 형의 둘째 아들을 계자로 들
-안적의 묘와 묘역-
인 아들이고 둘째 상오(相五)와 셋째 상우(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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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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