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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16대부터부여태동마을에뿌리내리다.



부여 지토리는 경기 양주에 본을 둔 풍양 조씨 마을이며, 조남민의 16대 조상들을 모신


산소가 있다. 조남민이 현재 살고 있는 지토리 태동마을 집터는 조남민의 할아버지를 비
,

롯해3대째살고있는자리이다.이집터에처음집을지으셨던할아버지는53세까지사시


다 돌아가셨고 아버지께서는 74세에 돌아가셨다. 현재 조남민이 살고 있는 집은 할아버



지가 처음에 지으신 집을 헐고 새마을운동때 조남민이 직접 흙벽돌을 찍어 4칸짜리로 새


로지은것이다.


부여군장암면지토리는총4개의리로구분되어있고,등애,사창,용왕골,태동,지장(


지장골), 잣티(백티)라고 부르는 자연마을들이 있다. 이 가운데 등애는 등성이에 불을 켠


것같다는데서유래하였고,사창은조선시대곡식을보관하는창고,용왕골은용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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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빙빙돌다승천하였다는것에서마을이름이생겨났다고한다.지장골은예전에종이
를 만드는 곳이 있었고, 잣티는 잣나무가 많은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현재 조남민이 거
주하는 지토 3리는 태동마을이라고 불린다. 삼태산 아래 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생겼
다고한다.
초등학교를졸업하고명심보감을익히다.
풀뿌리와나무껍질을먹던일제강점기를지나조남민이초등학교5학년이되자6.25전
쟁이 일어났다. 조남민은 마을 사람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깊은 굴을 파서 피난처를 만들
었던것을기억하고있다.오래된일이라그당시의생각이잘나지않지만,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북한노래를부르게했던것이가끔생각나곤한다.
조남민은6.25전쟁중5km되는길을걸어다니며14살에야뒤늦게초등학교를졸업했
다. 이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지토1리 최인환 선생님에게 명
심보감을 배웠다. 그 시절의 배움은 훗날 조남민이 향교의 유림으로 활동할 수 있는 중요
한밑거름이되었다.
전쟁중이라살기가어려우니집안에일손을도와야해서공부에만집중할수있는상황
은 아니었다. 집안일을 도우면서 공부를 해야 했는 상황이었지만 열심히 배웠다. 그 당시
의서당수업은선생님이신접장님이직접일러주시는것도있지만,학생들의수준이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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