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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곶리는 서씨가 많이 분포되어 살고 있으며 서씨가 마을에서 제일 먼저 터를 잡은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에 인구가 많았던 때는 일제 시대에 걸쳐 6.25동란 전후까지였으며 그 후 인
구가 점차 줄어들었다.
6)
지 명
노루지
: 이조시대에 예산군에 속해있었다 하여 장곶리 일원을 예산 노루지라 부른다. 한편
마을의 큰 샘에 도고산 노루가 내려와 물을 먹고 갔다 하여 노루지 또는 노루 장자를 써서
장곶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장곶리
{장포}
신창말
: 평창말 남쪽에 있는 마을. 위 아래
두 마을이 있는데 이곳이 전에 신창땅 이었다.
북쪽에 아산뜸이 있다.
아산뜸
: 신창말 북쪽에 있는 마을. 아래 위
두 마을이 있는데, 이곳이 전에 천안땅 이었다
가 아산땅이됨.
평창말
: 노루지 북쪽 마을. 고려 공양왕 때 근읍의 조세를 받아 쌓아두던 창고가 있다.→
평창
샘 : 아삼뜸에 있는 큰 우물.
7)
전 설
이마을에서 전설은 조사되지 않았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인 집단행사
주민들끼리 친목계로 조직되어 있으며 경조사시에 운영된다.
9)
특별하게 소개할 인물
이마을에서 특별히 소개할 만한 인물은 조사되지 않았다.
10)
종교단체
장곶 감리교회 선장면 장곶 22번지 목사 임해성 종파: 기독교 대한 감리교
11)
공장현황
이마을에서 현재 가동 중인 공장은 조사되지 않았다.
12)
마을의 특성
장곶리마을은 그 이름의 유래처럼 지형의 영향을 받아 험한 지세를 생각 할지도 모르지만
실재는 많을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는 도시들중 하나이다. 일제시대에 전기가 들어왓고 그
이후에도 전면적이 경지정리가 되었으며 도고저수지의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천혜의
답작 농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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