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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남매중넷째로태어나다.



서녘 서(西)자 수풀 림(林)자의 서림(西林) 이씨 가문은 부여 홍산군 남면 송암 1리 호


암마을에서 16대째 집성촌을 형성해 살아오고 있다. 1947년생 이붕철은 서림 이씨 가문
,

의9남매중넷째로태어났다.이붕철의위에형이세명있고,밑으로는남동생하나와여


동생이넷이다.



예전에는홍산의대선리까지바닷물이들어와큰배가들어왔다나갔다하기도했다고


전해진다.이붕철이태어난송암도농사짓기에는적당한곳은아니었다.이붕철의부모님


은송암마을에서농사일을하셨는데,열마지기농사를지어아홉식구가먹고사는생활


이항상배고픔의연속이었다고한다.


이붕철은아주어릴적동네에큰물난리가났던기억을가지고있다.당시엔벼농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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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놓으면장마때동네앞까지물이들어와서농사를망치는일이많았다.참어려운시절
이었다.박정희대통령때에부여출신인김종필국무총리가주선해둑과제방을쌓는공사
를진행했고,그이후물난리에걱정이없는마을이되었다.
보리곱살미먹고살던시절.
6.25전쟁이끝나고가난한시절.이붕철은남면마정리에있는마정초등학교에입학하
였다. 책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학교를 갔다. 먹을 게 없어 도시락에 새우젓 반찬만 넣고
다녔는데, 도시락과 책을 보자기로 싸서 어깨에 메고 뛰는 바람에 도시락은 언제나 밥과
새우젓이뒤섞인비빔밥이되었다.집에서학교가1.2km거리로,도시락을갖고가지않았
던날은뜀박질로집에와보리밥을먹고다시학교로뛰어가곤했다.한참클시기라학교
에도착하면소화가다되어허기가졌다.
서당에서공부하다
당시의 보통 사람들처럼 이붕철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상급하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신 한문 서당에 다니며 이호성 선생에게 배웠다. 이호성 선생은 돌아가시기 몇 해 전까
지도홍산향교에다니면서후학들을위해애쓴한학자이시기도했다.같이배우는학생들
이 30명의 정도였는데, 천자문부터 명심보감, 소학까지 같이 배웠다. 이붕철에게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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