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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추천받아수목리이장을맡게되었다.5년정도하고그만두었는데다음이장



이 금방 그만두는 바람에 1986년에 또 이장을 맡았다. 이듬해 큰 수해를 겪고 수해 복구


물품이나지원금의분배와관련해험담을하는사람들이있었다.양심적으로책임감을가
,

지고 이장직을 수행했었던 안기춘은 크게 실망하고 수해복구를 마친 이후 이장직을 그만


두었다.그러나후임이장이이장직을그만두는사정이생겨2001년까지두차례나더이



장직을맡아마을에봉사하였다.


마을일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간에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섭섭하게 들리는 이야기도


있다.그러나나쁜일만있지는않았다.이장이되어논에공동방제를하고벼에피해를입


은 주민이 있으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성심껏 일했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농협


조합장,면장,군수등이장으로일하는동안받은수많은표창이안기춘이성실함을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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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고있다.
주변사람들의추천으로유림이되다.
2011년에안기춘은부산서원의총무가되었다.오랫동안성실하게이장을역임하던그
를주변사람들이눈여겨본것이다.특히부산서원의일을맡아보던분가운데충남도지
사였던김영만씨가적극적으로안기춘을추천했다.주변사람들의추천으로유림에발을
디디게된안기춘은그렇게부산서원의총무가되고유사를거처유림회장이되었다.현재
는부산서원원장이다.
부산서원
부여군규암면진번리에있는부산서원은1719년(숙종45년)에창건되어같은해사액
되었다.부산서원은조선인조와효종연간에학계와정계에서크게활약한김집과영의정
이었던이경여의위패를모신서원이다.대원군때훼철되었다가1980년에복원되었다.현
재부여군향토유적으로지정되어있다,
부산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9월 18일 추향제를 봉행한다. 부산서원은 동매(冬梅)로도
이름난 서원이다. 부산서원에 위패가 모셔진 이경여가 청나라 심양에 억류되었다 돌아올
때가져온매화3그루를가져왔는데,그가운데한그루가일제강점기까지살아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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