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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여러 차례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부인은 강화최씨(江華崔氏) 지평 최선계(崔善
繼)의 딸과 원주원씨(原州元氏) 증승지 원신남(元信男)의 딸이다. 그가 언제 왜 평촌리로 왔는지는 확
인되지 않는다. 집안에서는 인조반정(1623년) 때 왔다고도 하지만 근거는 없다. 그 전의 일일 것으로
추정하며 대략 400년 전으로 본다.
안몽란은 응훈(應塤)과 응호(應
)등 2남1녀를 두었다. 안응훈은 세 아들 규(珪), 욱(頊), 우(瑀)를
두었고 안응호는 경(璟), 장(璋), 경(璥) 삼남을 두었으니 이후 후손이 많이 늘어나서 오늘까지 번창하
는 계기가 되었다. 안몽란의 딸은 주부(主簿)를 지낸 이기문(李起門)과 결혼했는데 이기문은 예안이
씨 온양(송악면 외암리) 입향조인 이사종(李嗣宗)의 삼남인 단(
)의 아들이다. 안몽란의 묘소는 평촌
리에 있다.
한편 그의 형으로 사옹원 봉사를 지낸 안몽주(1562~?)의 묘는 양주에 있는데 첫 번째 부인 여주이
씨의 묘가 방수동(方水洞-염치읍 방현리)에 있는 점이 특이하다. 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 한 가
지는 그의 동생도 음봉으로 내려와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안몽설(1567~1638)은 음봉면 쌍암리 지역에 들어와 터를 잡았다. 부인은 예안이씨 이륜(李崙,
1541~?)의 딸이다. 이륜은 예안이씨 입향조인 이사종의 장남이다. 안몽설이 비록 음봉에 자리 잡았
지만 혼인을 계기로 들어온 것은 분명하다. 형인 안몽란도 비슷한 시기에 함께 왔을 것으로 추정한
다. 안몽설의 큰 아들 응명(應明)의 묘가 송악면 동화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평촌리 안몽란 쪽과 연계
가 확실하다.
[65] 순흥안씨 안수인
| 安守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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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은일(隱逸)로 순흥안씨(順興安氏) 14세이고 3파(교서공파)의 문정공파 중 승지공파 아
산시 지역 신창면 궁화리 입향조이다. 현재 궁화리에 거주하는 26세(世) 안상완(安商完, 79세)씨의 12
대조이다.
안수인의 고조는 문과 급제 후 대사헌·대제학·우참찬 등을 지낸 문숙공(文肅公) 안숭선(安崇善,
1392∼1452)이고 증조는 연안부사(延安府使)를 역임한 안의(安誼)이며 조부는 형조정랑·이천부사
등을 지낸 안우삼(安友參, 1441~1494)이다. 아버지는 공조정랑을 역임하고 좌승지로 추증된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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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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