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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여리
밖에서도 뚜렸하게 보였고 제비바위와 봉수대는 거북의 등판처
50
(20km)
럼 보이고 괴목은 거북의 머리처럼 보여서 우리 고장에서는 거북선 바위 라고도 불
렀다
그러나
년 경에 이 괴목이 수명이 다하여 고사
하였으므로 이제는 거북
1980
선 바위 의 모습도 사라지게 되었다
연암산 봉수대는 남쪽으로
여리 떨어진 천안군 풍세면 삼태리의 태학산
30
봉수대의 봉활를 이어 받아서 북쪽으로
리 떨어진 평택 망해산
봉수대에
25
전달하였다
조선왕조시대에는 봉화간
이라는 제도를 두어 봉수군으로 종사하게 하였는
데이들은 봉수대에서 봉화
올리는 일을 담당하였다 봉수군을 봉군
는 봉졸
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양민 양민 으로 천역
에 종사하는 신
6
량역천
의 신분이었다
*æ6
승 마
5.
말은 기원전
년경부터 가축으로 길러 왔는데 몸빛은 밤색 백색 회색 등이
2700
있고 다리가 기름하여 잘 달린다
세까지 번식하는데
4
16
20
4
한 후
일 만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농경 군
6
335
사 운반 승용 등에 이용되며 디프테리아 혈청을 만드는 데에도 쓰인다
옛날에는 말이 가장 신속하고 기동성이 높은 교통수단이었다 따라서 긴급한 공문
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참
을 설치하고 파발마
를 두어 이용했다
그리고 지방에 따라서는 역
과 원
을 설치하여 역마
를 이용하게 했다
조선시대 온양군 시흥역
아산현 장시역
신창현 창덕역
Æł
역마
를 두어 공무를 띠고 가는 관원
들이 이용하였으며 온양군의 신원
송현원 오산원 망빈원 애원 임번원 대추원 용두원 아산현의 요로원 불장원
홍인원 신창현의 명암원 마장원 용정원 신례원 등의 원
이 있어 공무로 지방
에 내려가는 관원들의 숙식
과 아울러 말필
의 먹이를 제공하였다
망른 승용
으로 이용하는 한편 수송수단으로 애용되었으므로 군사상으로도 매
우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민첩한 기동성을 지녔으므로 말은 군마
로서 필수적
이었고 기병들이 상
더했다 그리고 장
차 무관
으로 진출하려는 한량
이나 무변
들은 필수적으로 기마술
을 익혀야 했으며 무과
에는 반드시 기마술을 시험하였다
민간에서는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운반수단으로 말이 애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담마
이다
부담마는 말의 등에 부담농
을 싣고 그 위에 사람이 같이 탈 수 있도록 꾸
민 말이다 부담농이란 의류
나 책같은 것을 담아 말 잔등에 싣는 작은 농짝이
이 부담마는 남녀 구별없이 탈 수는 있으나 대개의 경우는 여자 하인이 타는 것이
원칙이며 상류층의 부녀자는 말을 탈 수 없고 다만 가마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하
계급에 속하는 기생들이 먼 길을 갈 때는 말을 타고 다녔으며 지방의 고관
6
행차에는 관기
한 쌍이 머리에 전립
을 쓴 군복차림으로 말을 타고 앞에
서 길을 안내하였다
군마
나 역마
또는 상류계층의 말은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그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마소를 부릴때 고삐를 걸쳐 얽어 매는 줄
광안
2)
말 주둥이 굴레에다 둥근 눈처럼 생긴 장식물을 붙인 것
3)
말의 입에다 물리는 쇠로 만든 물건인데 굴레에 달렸으며 이 한 끝에 고삐를 매어
말을 부린다
마함 이라고도 한다
4)
고삐 라고도 하는데 마소의 재갈에 잡아매어 끄는 줄
가슴걸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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