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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곡리· 谷
유곡리· 谷
유곡리는 송악면의 한 마을로 사구시와 느릅실로 나뉘며 마을 총 인구는
457
명으로 총
148
호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봉곡사가 있고 봉공사에 불화
1
점이 있으며 유곡리는 온양군 남상면의 지역으로서 느릅나무가 있었으므로 느릅실 또는
유곡리라 하는데
,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기소 심곡리 신성리를 병합하여 유곡
리라 하여 아산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유곡리 위치도 >
<
사구시 느릅실마을 유곡리
유곡 리는 사구시와 깊은골 신성강쟁이로 이루어 졌으며 사구시 마을은 원래 사기소라
1
불리우다 변형되어 사구시로 불리고 있는데 이러한 이름이 불리게 된 이유는 마을에 사기
를 굽던 곳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신성 강쟁이 마을은 뒷산 너머 강재이라는 같은 마을이
였으나 일제때부터 구역을 나누면서 유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유곡 리는 적지미와 느릅실로 나뉘는데 흔히 느릅실로 불리우고 있으며 유곡리라는 명칭
2
도 느릅실마을로 인해 지어진 것으로 옛날 느릅실에는 느릅나무가 무척이나 많았다고 하
며 적지미는 느릅실 아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땅이 붉은 색이라 하여 유래되었다
봉곡사 대웅전 및 고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323
호로 송악면 유곡리 산
63
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
1993
7
20
일에 지정되었고 관리 및 소유자는 봉곡사이다
이 건축물은 조선 시대의 승람과 지리지에는 석암사 라 했는데
"
"
1929
년간 환여승람에 봉
"
곡사 라 한 것으로 보아 사명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
사찰 입구 안내판에
신라
51
대 진성여왕 원년
(887) 2
월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유곡리· 谷
유곡리는 송악면의 한 마을로 사구시와 느릅실로 나뉘며 마을 총 인구는
457
명으로 총
148
호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봉곡사가 있고 봉공사에 불화
1
점이 있으며 유곡리는 온양군 남상면의 지역으로서 느릅나무가 있었으므로 느릅실 또는
유곡리라 하는데
,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기소 심곡리 신성리를 병합하여 유곡
리라 하여 아산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유곡리 위치도 >
<
사구시 느릅실마을 유곡리
유곡 리는 사구시와 깊은골 신성강쟁이로 이루어 졌으며 사구시 마을은 원래 사기소라
1
불리우다 변형되어 사구시로 불리고 있는데 이러한 이름이 불리게 된 이유는 마을에 사기
를 굽던 곳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신성 강쟁이 마을은 뒷산 너머 강재이라는 같은 마을이
였으나 일제때부터 구역을 나누면서 유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유곡 리는 적지미와 느릅실로 나뉘는데 흔히 느릅실로 불리우고 있으며 유곡리라는 명칭
2
도 느릅실마을로 인해 지어진 것으로 옛날 느릅실에는 느릅나무가 무척이나 많았다고 하
며 적지미는 느릅실 아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땅이 붉은 색이라 하여 유래되었다
봉곡사 대웅전 및 고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323
호로 송악면 유곡리 산
63
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
1993
7
20
일에 지정되었고 관리 및 소유자는 봉곡사이다
이 건축물은 조선 시대의 승람과 지리지에는 석암사 라 했는데
"
"
1929
년간 환여승람에 봉
"
곡사 라 한 것으로 보아 사명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
사찰 입구 안내판에
신라
51
대 진성여왕 원년
(887) 2
월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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