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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이운영되었던시기에지토리에는외지사람들을포함해인구가많았다.금광안의



기둥인동박이무너져사고가난경우도있었지만,다행히임천광산에서는세상을떠들썩


하게했던청양광산과같이큰사고는없었다.임천광산은1975년에폐광되었다.
,



삼부토건에입사하여국내외여러곳에서일을하다



광산이폐광된이후1977년부터1993년까지15년간아는분의소개로삼부토건에서일


을 했다. 입사 당시 울릉도 항만공사로 저도항의 방파제 공사에 3년간 참여하였다. 당시


가족과멀리떨어져울릉도에서홀로살았다.집에는1년에한번정도갈수있어서,아이


들이크는모습을곁에서지켜보지못했다.울릉도에서3년을지낸후에는경상도상주에


서낙동강작업을했고,이후에는사우디아라비아로갔다.사우디아라비아에서하수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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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2년 동안 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근무하다 1993년에 퇴직을 했다. 퇴직 이후에
는3500평의농사를지으며산다.
향교에발딛게된계기
정종진이향교에관심을갖고유림의문화를접하게된것은2000년도무렵이다.그당
시 정종진은 60대 초반으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했다. 처음에는 서원이나 향교의 제사를
구경겸참여하기시작했는데,임천향교의장의를맡아달라는부탁으로본격적으로유림
문화에발디디기시작했다.
2년간의 임천향교 장의 활동을 마친 이후에도 임천에 소재한 서원이 많았기 때문에 정
종진의유림활동은지속적으로이어졌다.향교의제사는1년에두차례이고,서원이여덟
군데가 있어 유림의 활동이 바쁘게 이어졌다. 사람이 부족해 제사 준비가 쉽지 않다는 것
을잘알고있기에봄에는약20일가량이어지는제향에꾸준히참가하고,가을에도제향
이있어바쁜편이다.또한면단위의유림회도있어서유림활동도열심히해나갔고그결
과 유림회장을 맡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도 즐겁고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
다.꾸준한유림의활동은그의행보를동곡서원과임천향교전교로까지이어갔고,현재는
동곡서원의원장을맡아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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