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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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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
1.
대궐이나 공해의 앞에 있는 문을 삼문이라고 하는데 중앙에 정문
동쪽에 동
협문
서쪽에 서협문
등 대문 셋이 나란히 달려 있는 문이다
공해란 관가
官家
소유의 건물을 말하며 오늘의 관공서 건물에 해당된다 조선왕조
시대에 공해에 딸려 있던 삼문으로는 온양군
동헌
앞의 온주아문
≫¨
이 온양시 읍내동에 남아 있고 아산현
의 동헌앞에 있던 여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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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에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공해의 삼문을 출입할 때에는 동협문으로 들어가서 나올 때는 서협문을 통하게 되
어 있으며 중앙에 있는 정문은 그 공해의 책임자인 관장
이나 또는 상급기관에
서 내려온 상사
만이 출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암행어사가 정식으로 관
가에 출도
할 때에는 마패
를 든 역졸
을 앞세우고 삼문앞에서 정문
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홍살문
2.
궁전 관아 등의 저연 진입로
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을 홍살문이라고 한다 둥근 기둥
2
홍분
또는 홍전문
이라고도 부른다
온양 아산지방에 현존하는 홍살문은 온양시 읍내동 소재 온양
아산리 소재 아산향교 아산군 신창면 읍내리 소재 신창향교 아산군 염치읍 백암리
소재 현충사
에 남아 있을 뿐이다
하마비
3.
조선왕조시대에 궁가
宮家
종묘
문묘
등의 앞을 지나갈 때는 반드시
도보로 걸어서 가야 했으며 말을 탄 사람은 말에서 내려야 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신성하고 존엄한 곳이기 때문에 말을 탄 채 지나가는 행위는 불경
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지점에서 하마비
를 세웠다
하마비는 한자로
라고만 돌로 새겨 놓은 것도 있도 또
라는
5.u
글귀를 조각해 놓은 돌비석도 있다 그 뜻을 풀이하면 누구든지 이 앞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라 는 명령문 이다
이 고장에서는 온양향교 아산향교 신창향교의 홍살문 앞 진입로 쪽에 하마비가
서 있다
봉 수
4.
봉수는 봉수
를 올려 난리가 일어났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 봉수제도는 신
라 시대부터 있었는데 조선왕조때에는 전국에
여 군대의 봉수대
가 있었
600
다 어느 방면에서 불을 올리면 계속 전해져서 서울까지 오게 되는데 평상시에는 매
일 초저녁에 불을 올렸고 만약 올릴때에 아니 올리거나 아니 올릴 때에 올리면 그
방면에 변이 있는 줄을 짐작하게 된다
올리는 도수
는 평상시에는 한번 적이 나타나면 두 번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번 국경을 침범하면 네 번 접전하면 다섯 번을 올린다
불빛을 이용할 수 없
는 낮에는 토기똥을 태워서 곧게 올라가는 연기를 이용하였으며 날씨가 흐리거나
배가 와서 연기를 이용할 수 없을 때에는 특사
가 말을 타고 달려가서 상황을
t&
보고 하였다
봉수를 봉화 연화
라고 하며 봉화를 올릴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봉화둑 또는
&
봉화대
봉수대
봉대
연대
등으로 부른다
)', '
)' , '
&=
)' '
연암산 봉수대
)pb =
아산군 음봉면 관내의 중앙부에 위치한 연암산은 남으로는 동암리 북으로는 원남
리 두 마을 의 경계에 있는 웅장한 산인데 이 산의 정상에 제비집 모양으로 생긴
큰 바위가 있어 제비바위 또는 연암
이라고 한다
이 연암산 제비바위 옆에 봉수대
가 있었는데 둘레
높이
70m,
1.5m,
넓이
의 석축으로 되어 있다 지금은 봉화둑이 모두 허물어져서 흔적만
22m,
370
남아 있을 뿐이며 제비바위 위에 수백년 묵은 한 그루 괴목
이 우람하게 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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