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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일소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과단성있는 개혁을 단행 우선 안동김씨 일족을 세도
에서 몰아내고 악덕서원을 철폐하도록 하였다.
경제적 시책으로 일반 평민에게만 부과하던 군포를 호포라 하여 양반에게도 과하였으며,
또 종래의 한곡제도를 사창제도로 고치고 관리의 부정을 막았다.
이밖에도 법전의 완비 정권과 군권의 분리 의복제도의 개량등 볼만한 정치를 많이 하였
다 그러나 반면 경복궁 재건으로 인한 무리한 과세등으로 경제계를 혼란케하고 천주교를
탄압하여 무고한 백성과 외국인 선교사를 죽임으로서 백성의 원성을 사고 대외적인 감정
을 악화시켰다.
또 세계정세에 어두워 쇄국정책을 함으로서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일으켰는데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척화비가 세워졌는데 신창 국민학교에 그 중 하나가 세워졌다 이 척화
비가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병인작신미립 이라는 글로 보아 병인 신미양요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척화비의 크기는 세로
105.5cm,
가로
41.5cm
로 직사각형이
다 비의 양측면과 뒷면은 새겨져 있지 않고 전면에만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세로 글씨로 써 있다.
양이침범비전즉화주매국
성아만년자손
병인작행말입
이 쇄국정책으로 인해 서양문화 수입에 지장을 가져온 것 등
은 씻지 못할 실정이었다 이러한 실정으로 인한 국민의 원성과 유학자의 불만이 높아졌
을 때 민비는 고종을 조종하여 최익현의 대원군 탄핵의 상소가 올라온 것을 계기로 그를
정권에서 물러나게 하니 꼭 집권
10
년만의 일이었다
그 후 대원군은 민비를 비롯한 민씨 일파와 암투를 계속하여 정치표면에 나선 적도 있었
지만 끝내 정권을 다시 잡지 못했다.
이현종
이 현종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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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
6·25
를 전후하여 북괴군과 맞서 용전 분투하다가 전사한 우리 아산군
내의 경찰관들이다 국민의 안녕 질서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얼을 기리기 위해 아
산군 신창면 읍내리 휴게소에 세워진 충혼탑 안내판과 탑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
다 이 탑은 지고한 애국과 충성의 표상으로 건국 및 호국 경찰의 사명을 완수하다 산화
한 온양 경찰서 소속 경찰관의 충혼을 봉안 하였다
. 8·15
광복후 비운의 역사속에서 반공
구국의 투철한 신념과 사명으로 내 일신을 바쳐 각 지구 전투에서 용전타 전사한
38
주의
위명과 업적을 추모하여 위령코자 온양 경찰서 직원과 아산군내 경우회원이 합동으로 그
날의 격전지 이곳 신창고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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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계단을 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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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탑을 세워 만세의 빛내고저 건립
한 것이다.
여기 아로새긴 당신들의 넋은
살신성인의 증인되시고
구원한 민족사의 등불이시다.
고난과 비운의 구비구비마다
그 뜨거운 충정 가슴에 안고
민족의 제단에 산화하셨네
못다핀 겨레의 영혼이여!
님들의 고귀한 뜻 돌로 세우니
영원토록 이 나라의 파수가 되길
고경감 이헌종 조순화
고경위 곽병철 김영준 김윤식 김종석 민병룡 박근환 박병갑 박용규 박재익
박을제 오석근 우영제 유재경 윤병찬 이경승 이광식 이재덕 이재훈
이종환 이필선 정갑준 지춘교 차은식 최용진 최창식 홍종모 황영석
고경사 김도식 김정립 원종무 신태운 이상진 이영삼 이유형 최정남 고순경
정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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