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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양에서농사를지으며대를이어상쇠로살아온삶(박용국) !
“그 전에 농기계 사업을 했슈. 이 동네에서 제일 처음으로 콤바
인을 샀슈. 그때 당시는 통일벼가 나오던 시기에유. 22호, 23호 통
일벼. 그 때가 박정희 시대인데, 70년대인데, 벼 한섬 두섬 먹던
걸, 통일벼는 다섯섬 넉섬씩 먹으니. 너도나도 통일벼를 심었지유.
흑벽돌 찍어서 토방 짓고 그랬슈,
그 때는 소로 하고, 어쩌다 경운기로 하고. 경운기가 제일 많았
지유. 그래 기계사업을 하는데. 그때 처음에는 잘 안 되었지유. 바
심을 허는데, 콤바인 치는데, 통일벼는 막 쏟아져유. 일반벼는 아
무리 집어던져도 안 쏟아져유.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몰랐슈. 왜
콤바인을 가지고 하는지. 정부에서는 사람이 벼를 베서 말려유. 깔
아유. 걷어서 묶어 줄가리 쳤다가 탈곡기 들어가면 모여서 탈곡기
를 해유. 그렇게 하면 쏟아지는 비율이, 콤바인 하는 것보다 더 쏟
아진대유. 그거를 허가를 내서 콤바인을 만들은 거다. 콤바인이 덜
쏟아진다는 거지유. 콤바인이 나오던 초창기에 샀지유.
일년 지나니까, 너도나도 하니까, 서로 해 달라니까 걷잡을 수가
없어. 나중에 콤바인 사는 사람 있더라고. 나 혼자 감당이 안 되유.
그 때는 돈은 못 벌었지만, 일년만에 콤바인 값을 빼고도 남았슈.
그렇게 일거리가 많았슈. 요즘은 많아야 십이일, 십오일 하는데,
그전에는 사십오일, 오십일을 콤바인으로 일했슈. 어떻게 해요, 하
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때 당시는 괜찮았슈.”
콤바인으로 강원도 철원에 가서 작업을 한 적도 있다. 철원에
는 큰 들이 있어서 콤바인을 끌고 가서 바심(탈곡)을 했다. 시
기상 그곳에서 먼저 탈곡을 하고, 이곳에 와서 탈곡을 했다. 철
원의 마을 이장이 논 크기로 계산해서 품값을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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