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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된 안휘(安煇)이고 어머니는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안거인의 자(字)는 자영(子榮)이고, 부인은 진주소씨(晉州蘇氏)이다. 신창현 지역 입향조인 수인(守
仁)과 마찬가지로 사화로 인한 혼란을 피해 과천에서 은거지를 찾아 아산현(영인면 성내리)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뒤에 가선대부 호조참판으로 추증되었고, 계소(繼蘇)·윤소(胤蘇)·응소(應蘇) 등의 자
손을 두었다. 묘는 평택 진위의 소(蘇)씨 종산에 있었는데 1982년에 아산 음봉 후천동 종산에 이전하
였다. 현재는 문중에서 영인면 성내리 안골에 숭모재(崇慕齋)를 짓고 안휘(安煇)부터 안거인(安居仁)
이후 후손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63] 순흥안씨 안인노
| 安仁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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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안씨(順興安氏) 23세이며 참판공파(參判公派) 인주면 밀두리 입향조이다.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다. 부인은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안인노는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여‘고향을 떠나면 자손이 번창한다’
고 하여 이곳 아산땅에 정착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묘는 송악에 있었으나 실전되었다. 후손 중에 재미 화가 안봉규가 있다.
[64] 순흥안씨 안몽란
| 安夢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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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며 순흥안씨(順興安氏) 17세로 1파(추밀공파) 중 참판공파 아산시 지역,
송악면 평촌리 입향조이다. 현재 평촌리에 거주하는 후손 27세 안병훈(安炳薰, 71세)씨의 10대조이
다. 선대는 주로 경기도 양주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의 고조는 승사랑 안광수(安光
)이고 증조는 세자익위사 좌익위(정5품)에 오른 안경률(安景
이며 조부는 문과 급제 후 충청도관찰사까지 오른 증이조판서 세한재(歲寒齋) 안종도(安宗道, 1522
∼1600)이다. 아버지는 증좌승지 안세진(安世震, 1540~1590)이며 어머니는 대구서씨(大邱徐氏)로
병사 서봉(徐
)의 딸이다.
안몽란은 몽주(夢周), 몽란(夢蘭), 몽설(夢說)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품계는 선교랑이며 학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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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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