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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의길을걸으셨던조상님들



류익렬부여향교전교의부여향교에대한관심은그의고조,증조조부모님들로부터이


어온가풍에서비롯되었다.『부여향교지』에는류익렬의고조,증조,조부의유림활동상이
,

실려있다,고조부께서는향교에재산을헌납한분들을칭송하는글을지으셨는데,그글


이기록된현판이향교건물가운데하나인수선재에걸려있다.증조부와증조부의매형인



이철영 선생은 향교에서 예의범절을 지도하셨다. 류익렬은 자연스럽게 향교나 서원과 같


은유림문화에관심을갖게되었다.




6.25전쟁으로3개월간학교를못다니다.


1950년부여초등학교에입학했던류익렬은6.25전쟁이발발하자3개월간학교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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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했다. 9.28 수복 후 다시 학교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아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
나전쟁통에피난민들이거쳐간학교는시설이엉망이된상태였다.당시교실바닥에는피
난민들이보고간용변도있어서어린학생들이수세미로닦아냈고창문의유리도다깨져
있어창호지로문을발라정비한후공부를할수있었다.어려웠던상황이었지만선생님들
께서는엄격하고성실하게학생들을가르쳐주셨다.
열심히공부하여교사가되다.
초등학교졸업후,류익렬은한산중학교강사로근무하는고모가계신한산중학교로진
학을했다.이후전통이있는공주고등학교로진학하였는데,학교에서15리떨어진왕촌이
라는 곳의 친척집에서 통학을 했다. 도시락을 싸들고 6km가 넘는 자갈밭을 걸어서 가야
했지만,외지에나가공부하는처지에통학거리의불편함을토로할수없었다.
어려운상황이었지만류익렬은성실하고열심히학생시절을보냈다.당시쌀이귀해보
리밥을주로먹었는데,학교를마치면소를먹일풀을베는일을하며집안일도도왔다.류
익렬의공부비법은하교이후식사를마치고등잔불을켜놓고잉크를찍어학교에서배운
내용을 꼼꼼하게노트정리하는것이었다.류익렬의공부노트는공주고등학교100주년
기념행사의전시에선보이기도했는데,꼼꼼한그의공부노트는그가얼마나성실했는지
를잘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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