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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늦게뜨고일찍지는압수골

남,
압수골에는아이가많다.왜그러냐면압수골이깊은골짜기라해가일찍지고늦게뜨기

때문이다. 들판인 평촌리 사람들이 압수리 사람들을 평하는 말이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



라도좁은골짜기에아이들이많긴많았다.


압수는 예전에는 오지로 이름난 곳이었다. 외지사람들이 보면 논과 밭이 전혀 없이 보


인다. 그러나 골짜기마다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먹고살 만한 농토는 있다. 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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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루라고 부르던 나루가 마을 앞에 있었다. 외지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외부와소통하던나루였다.사공이정해져있었던것도아니고당번제로주민들
이돌아가면서뱃일을보았다.평촌리와신촌리사이에다리가놓이기전까지나룻배를이
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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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까지는마을에서30리라고했다.하루는금산장에갔다오는데다리위로아이들
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이 보였다.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마중 나왔었느냐고 물으니
마중안나왔다는것이다.그때그아이들의모습이귀신들의장난이라고생각했다.
전기가제일먼저들어온압수골
압수골은금산군에서전기사용을제일먼저했다.일제강점기에성주산자락어재리에
서청석을채취했기때문이다.학산에서전기가넘어왔는데,광산에서사용하기위한것이
었다.등잔불에익숙해있었던사람들이전기로불을밝힌다는것은신세계나다름없었다.
그러나전기공급은원만하지않았다.하루종일전기를사용할수있는것이아니었다.공
급시간이정해져있었기때문에어제리에서는그시간에맞추어생활하였다.
일거리가없던시절에청석광은주민들의가계에큰보탬이되었다.단지노동력을제공
하고 얻는 수고비였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용의 효과를 보았다. 막장에 들어가 채광
하는 사람도 있었고, 운반하여 가루로 만드는 과정에 고용된 사람도 있었다. 금강가에서
원석을갈아가루를내어전량일본으로가져갔다.마을로진입하는도로가없고여울이나
나룻배로통행하던시절이어서다리를놓으려고자재를운반해놓았는데며칠안되어광
복이되는바람에다리공사는이루어지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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