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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서기
1500
년경 대략
500
년전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심씨가 가장 많이 살
고 있다.
삼시리 마을은 현재 주로 제주 고씨와 광산 김씨가 살고 있으며 고병기씨가
7
있는 것으로 보아 서기
1750
년경 약
210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고 옛날에는 고씨
집성촌이었으나
5
6)
지 명
통미 마을의 지명
새터
통미 북서쪽에 새로 된 마을로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 함
상산
마을 뒤의 큰 산으로 높을 상자를 써서 상산이라 함
박삭골
통미 뒤에 있는 깊은 골
가잣골
딴곳엔 없는 가재가 많다하여 가잣골이라 함
빠들
신통리 앞에 있는 모든 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
잿걸
새터앞에 있는 들
통미
지새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이 작고 둥글다 하여 동미라 하였는데 변하여 통미
라 부름 신통리 뒤의 외딴 산을 통미라고도 함
통뫼
신통리 뒤에 있는 외딴 산
삼시리 마을의 지명
진득이 진동
마을로 넘어오는 아주 긴 길
골삼시리
삼시리 중 고랑진 아주 작은 마을
안삼시리
삼시리 안쪽에 있는 마을
안산뜸
안삼시리 맞은편 산너머 몇가구가 있는데 그곳을 안산뜸이라 부름
바깥삼시리
삼시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
삼시리
통미 동쪽에 있는 마을 이 마을에 세집이 있어서 삼실이라 했는데 변하여 삼시
리라 함.
7)
전 설
통미 마을의 전설
마을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통산이라고 하니 남쪽을 등진 도고산이 있어 서쪽을 방어
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마을 후원에는 이른바 우와형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글자 그대
로 소가 누워있는 형이라는 것이다.
평야 한복판에는 구수샘이 있었는데 현재는 논을 늘리려고 샘을 메우고 다음부터 마을에
초상이 자주 나고 현재 와서는 소의 죽통이 구멍 뚫렸다는 것이니 마을 주민들이 차차 전
답을 팔아먹고 마을이 빈색해지며 마을 앞에 보이는 들판이 소가 풀을 뜯어 먹는 풀밭이
었다고 전하며 그래서 통미로 불렸다고 전한다
심산부 스님의 일화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신통리 높은 산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다 이 암자에는 도술이
뛰어나 앞일을 훤히 내다 보는 심산부라는 대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암자는 너무
좁고 낡아서 다시 지으려고 했다 어느날 도사는 산 아래의 마을로 내려가 집집마다 다니
면서
"
내일부터 암자를 새로 짓는데 댁의 소를 하루씩만 빌려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마
"
을 사람들은 한명도 거절하지 않고 도사에게 소를 빌려 주겠다고 약속 하였다 도사는 너
무도 감사하여 인사를 잊지 않고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소를 가지러 소승이 오겠으니 새
"
벽에 소를 배불리 먹여 길마를 지은후 마당에 매어 주십시오 라고 일러두고 가버렸다 이
"
뜯날 새벽 그 마을의 최서방은 도사의 말대로 소를 배불리 먹여 마당앞에 매어놓고 도사
가 데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마절이 지나도 도사는 소를 데
려가지 않았다
. "
분명이 아침 일찍이 소를 쓰겠다고 했는데
...,"
이렇게 중얼거리며 또 한
나절을 기다렸으나 저녁때가 되도록 소는 그대로 마당에 매인 채 잠만 자고 있었다 어느
덧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마을에는 어둠이 찾아들어 최서방은 도사를 기다리다 못해 소를
1500
년경 대략
500
년전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심씨가 가장 많이 살
고 있다.
삼시리 마을은 현재 주로 제주 고씨와 광산 김씨가 살고 있으며 고병기씨가
7
있는 것으로 보아 서기
1750
년경 약
210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고 옛날에는 고씨
집성촌이었으나
5
6)
지 명
통미 마을의 지명
새터
통미 북서쪽에 새로 된 마을로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 함
상산
마을 뒤의 큰 산으로 높을 상자를 써서 상산이라 함
박삭골
통미 뒤에 있는 깊은 골
가잣골
딴곳엔 없는 가재가 많다하여 가잣골이라 함
빠들
신통리 앞에 있는 모든 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
잿걸
새터앞에 있는 들
통미
지새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이 작고 둥글다 하여 동미라 하였는데 변하여 통미
라 부름 신통리 뒤의 외딴 산을 통미라고도 함
통뫼
신통리 뒤에 있는 외딴 산
삼시리 마을의 지명
진득이 진동
마을로 넘어오는 아주 긴 길
골삼시리
삼시리 중 고랑진 아주 작은 마을
안삼시리
삼시리 안쪽에 있는 마을
안산뜸
안삼시리 맞은편 산너머 몇가구가 있는데 그곳을 안산뜸이라 부름
바깥삼시리
삼시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
삼시리
통미 동쪽에 있는 마을 이 마을에 세집이 있어서 삼실이라 했는데 변하여 삼시
리라 함.
7)
전 설
통미 마을의 전설
마을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통산이라고 하니 남쪽을 등진 도고산이 있어 서쪽을 방어
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마을 후원에는 이른바 우와형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글자 그대
로 소가 누워있는 형이라는 것이다.
평야 한복판에는 구수샘이 있었는데 현재는 논을 늘리려고 샘을 메우고 다음부터 마을에
초상이 자주 나고 현재 와서는 소의 죽통이 구멍 뚫렸다는 것이니 마을 주민들이 차차 전
답을 팔아먹고 마을이 빈색해지며 마을 앞에 보이는 들판이 소가 풀을 뜯어 먹는 풀밭이
었다고 전하며 그래서 통미로 불렸다고 전한다
심산부 스님의 일화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신통리 높은 산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다 이 암자에는 도술이
뛰어나 앞일을 훤히 내다 보는 심산부라는 대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암자는 너무
좁고 낡아서 다시 지으려고 했다 어느날 도사는 산 아래의 마을로 내려가 집집마다 다니
면서
"
내일부터 암자를 새로 짓는데 댁의 소를 하루씩만 빌려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마
"
을 사람들은 한명도 거절하지 않고 도사에게 소를 빌려 주겠다고 약속 하였다 도사는 너
무도 감사하여 인사를 잊지 않고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소를 가지러 소승이 오겠으니 새
"
벽에 소를 배불리 먹여 길마를 지은후 마당에 매어 주십시오 라고 일러두고 가버렸다 이
"
뜯날 새벽 그 마을의 최서방은 도사의 말대로 소를 배불리 먹여 마당앞에 매어놓고 도사
가 데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마절이 지나도 도사는 소를 데
려가지 않았다
. "
분명이 아침 일찍이 소를 쓰겠다고 했는데
...,"
이렇게 중얼거리며 또 한
나절을 기다렸으나 저녁때가 되도록 소는 그대로 마당에 매인 채 잠만 자고 있었다 어느
덧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마을에는 어둠이 찾아들어 최서방은 도사를 기다리다 못해 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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