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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역사민속과 민중생활사
주 강 현
(제주대석좌교수?해양문화연구원장)
Ⅰ. 서산의 해안취락과 어민의 삶
1) 조선후기 : 호산록의 경우
2) 일제강점기 :
『한국수산지』
의 경우
Ⅰ. 서산의 해안취락과 어민의 삶
1) 조선후기 : 호산록의 경우
서산지방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촌(
) 경관이다. 가옥과 경지의 연접현상, 개척되다가 남
은 도상의 나무숲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동시에 서산지방 촌락의 역사는
‘해만개척의 역사’
이다.
태안반도의 해안선은 출입이 많고 간석지가 많아서 일찍부터 농경지, 염전, 양식장 등으로 개척
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태안반도 지방에서는
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와 소금, 소금을
구워내기위한 땔감, 그리고 식수가 있는 곳이면 촌락입지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갖춘 곳이었
다. 실제로 태안반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육지의 굴곡부와 바다가 만나는 골에는 주민들도 그
연대를 알지못하는 오래된 방조제가 축조되어 농경지로 이용되는 곳이 많고, 소금 굽던 장소인
‘벗터’
‘벗말’
등의 지명이 확인된다. 즉 서산의 촌락사는
‘해만개척의 역사’
라고 규정지을수 있
을 것이다.
64)
『여지도서』
의 기록을 통해보면, 100호 이상의 큰 취락 안에 부석면의 대두리, 갈마리, 가사리,
64)
『서산시사(지리편)』
,1989, 119쪽.
4 |
2011_09
주 강 현
(제주대석좌교수?해양문화연구원장)
Ⅰ. 서산의 해안취락과 어민의 삶
1) 조선후기 : 호산록의 경우
2) 일제강점기 :
『한국수산지』
의 경우
Ⅰ. 서산의 해안취락과 어민의 삶
1) 조선후기 : 호산록의 경우
서산지방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촌(
) 경관이다. 가옥과 경지의 연접현상, 개척되다가 남
은 도상의 나무숲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동시에 서산지방 촌락의 역사는
‘해만개척의 역사’
이다.
태안반도의 해안선은 출입이 많고 간석지가 많아서 일찍부터 농경지, 염전, 양식장 등으로 개척
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태안반도 지방에서는
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와 소금, 소금을
구워내기위한 땔감, 그리고 식수가 있는 곳이면 촌락입지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갖춘 곳이었
다. 실제로 태안반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육지의 굴곡부와 바다가 만나는 골에는 주민들도 그
연대를 알지못하는 오래된 방조제가 축조되어 농경지로 이용되는 곳이 많고, 소금 굽던 장소인
‘벗터’
‘벗말’
등의 지명이 확인된다. 즉 서산의 촌락사는
‘해만개척의 역사’
라고 규정지을수 있
을 것이다.
64)
『여지도서』
의 기록을 통해보면, 100호 이상의 큰 취락 안에 부석면의 대두리, 갈마리, 가사리,
64)
『서산시사(지리편)』
,1989,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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