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8페이지

6페이지 본문시작

- 호당평균 소득
1리 갈미마을은 년/1,000만원, 2리 여술마을은 년/1,000만원
3)
자연경관
갈산 1리인 갈미는 선문대학교가 장재율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옥은 624도로 왼편에 위치하
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눈에 띠는것이 긴 다리와 2층으로 깔끔하게 지어놓은
마을회관, 그리고 오래 된듯한 팽나무가 있다. 여술은 여사리라고도 부르며 마을의 삼면이
산으로 둘러져 있다. 옛부터 산천이 풍요롭고 토지가 비옥하여 부유한 마을이며 한때 장수
하는 노인이 많아서 장수마을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4)
마을변천과정
본래 온양군 일북면의 지역으로서 갈미 또는 갈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
라 여사리, 내금리를 병합하여 갈산리라 하여 아산군 탕정면에 편입됨. 탕정초등학교가 있으
며, 물이 맑다하여 여수 여술 여사리가
>
>
되었으며 본래 온양군 일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
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금의 탕정면에 편입되었다.
5)
입향
갈미 마을에 터를 잡은 성씨는 인동 장씨와 동네 정씨, 그리고 소작을 하면서 살았지만 그
무렵에 들어온 전의 이씨, 안지므레에 살았던 고성 이씨가 처음 살았다고 한다. 실제적인 원
거인은 아마도 인동 장씨일것이라 한다. 그리고 한때 인동 장씨가 세력을 잡고 있었는데, 현
재는 모두 떠나고 없다. 동네 정씨는 이곳에서 5대째 살고 있는데 그러니까 150년이 조금
넘었다. 여술 마을의 시작은 김해 김씨로 알고 있으며 현재는 김해 김씨가 모두 떠나고 한
집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성씨가 전의 이씨이며, 그 후로 천안 전씨
가 6대째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의 이씨는 지금 한 집도 살고있지 않다고 한다.
6)
지명
갈미(갈산리) : 갈산리에서 으뜸가는 마을 뒷산에 칡이 많았다고 한다.
안지므레 : 지므레 안쪽에 있는 마을
여 술 : 지므레 남쪽 들 가에 있는 마을 한 내의 물이 맑음으로 여수라 하던 것이 변하여
여술또는 여사리라 한다.
지므레 : 갈산리와 명암리 경계에 있는 마을. 두 마을이 있는데 안지므레는 갈산리에, 바깥
지므레는 명암리에 갈려 있음. 옛날 김씨가 많이 살면서 열녀 효부가 많이 났으므로 김호례
)라 하던 것이 변하여 지므레가 되었다함.
산제단 : 여술 뒷산에 위치한 산으로 옛부터 음력 정월 14일 날이면 동리의 안녕을 비는 산
제당이 있어 지금까지 행하여 지고 있음.
조 산 : 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조씨들의 조상이 묻혀 있어 조산이라 불리고 있다.
장재울골 : 마을 서편 서낭당을 넘어서 있는 골 옛날에 큰 부자 즉 장자가 살았다해 붙여진
이름.
큰여술골 : 마을 동편 어귀를 돌면 나오는 골 옛날엔 그곳에도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서낭당 골 : 마을 서편 작은 고개에 서낭나무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
내건너들 : 갈미 앞에 있는 너른 들. 곡교천변의 큰 평야지를 말함.
진둠벙 : 여술 앞에 있는 둠벙. 현재 현재 경지 정리가 되어 논으로 변하였음.
선문대 : 1993년도 3월에 천안에서 공대 및 자연대가 이주하여 성화대학이라 명하였는데 94
년도에 선문대로 개명하였으며 면적이 46만평에 이른다.
7)
전설
지므레
김안서라는 선비는 홀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양반이면서도 집이 넉넉하지 못하여 가난한
집안의 처녀를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가 어찌나 극성스러운지 며느리를 자기의
외아들을 빼앗아간 죄인으로 취급하면서 학대하였다. 마침내는 남편과 각방을 쓰게 했으며
과거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남편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트집
을 잡아 꾸중을 일삼았으며 숨돌릴 틈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가

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