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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 공에게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라 재촉 했다. 그러나 공은 적의 간사한 꾀를
미리 알고 쉬운 방법으로 적을 물리치려 이에 반대하였다. 공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자들은 공이 싸우기를 회피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죄라고 탄핵하여 정유(丁酉)년 2
월에 공을 옥에 가두었다. 이에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이 보고하기를,
「적이 무서워하는 것은 수군인데 이순신을 갈아서는 안 되고 원균을 보내서는 더욱
안 됩니다.」
했으나 조정에서는 듣지 않았다. 이원익(李元翼)이 탄식하기를,
「나랏일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하였다.
임금이 대신들에게 이 일을 의논하게 하였더니 판부사 정탁(判府事 鄭琢)이,
「군사의 기밀은 멀리 앉아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또 그가 싸우려 하지 않는 데
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니 청컨대 뒷날 다시 한 번 공로를 세우도록 하소서.」
하니 마침내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이때 어머님이 아산에서 돌아가시니 공이 울부
짖으며,
「나라에 충성을 다했건만 죄를 입었고, 어버이를 섬기려 했건만 돌아가시고 말았
구나.」
하니 듣는 이들이 모두 슬퍼하였다.
공(公)이 진영에 있을 때 운주당(運籌堂)이란 이름의 건물을 짓고 모든 장수들과 함
께 거기서 병영의 일을 의논하였다. 원균이 공의 자리에 부임해서는 공이 하던 일을
모두 변경했다. 운주당에 첩을 두고 울타리를 둘러막으니 모든 장수들이 그의 얼굴
을 보기가 어려웠다. 못된 짓만 하므로 여러 군사들에게 인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요시라(要時羅)가 와서,
「청정(淸正)의 후원 군사들이 이제 한창 오는 길이니 그것을 막아 치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다. 조정에서도 빨리 나가 싸우라고 재촉하였다. 칠월에 원균이 전군을 다
데리고 나가 싸웠다. 적이 야음을 틈타 엄습하여 군사 모두가 패배하여 달아나다가
죽었다. 군함 백여 척도 모두 다 한산(閑山)에서 파선되고 말았다.
적들은 바다에서 상륙하여 남원(南原)을 함락했다. 조정에서는 마침내 공이 상중임
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용하여 통제사로 삼았다. 공은 십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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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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