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08페이지

59페이지 본문시작

2019
2019
제53호
제53호
지역학칼럼
충남학특강-충남의역사문화바로보기
道山學風도 있었으며, 윤 휴(白湖, 1617~1680)도 경학·성리학·예학 등이 공존하여 황의동이
‘문화와정신의신세기’,그리고충청문화
지적하듯호서유학은영남유학에비해개방적이며다양한색채를지니고있기도하다.
더욱이 17세기를 주도한 송시열 등 노론세력은 조선이 中華의 嫡統을 계승한 ‘중화문화의 담당
'충남학'은 충남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되살리고, 그것을 토대로 21세기 충남의 활기찬
자’라는자부심을갖고있었고,그중화문화의실체로서예문화의확립은필수적조건이었다.17
미래를 이끌어나갈 주역들을 길러내는데 목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역사와 문화가 융성했던
세기 한국사상사에 있어 대외적으로는 북벌, 대내적으로는 예치가 당대의 최대 화두였다. 그리고
시기에는어김없이그시대를이끌었던시대정신이있었고,그주체들이있었다.바야흐로경쟁화,
바로 그 “國家再造”의 과정을 주도하고 그 현실타개책을 가장 정면에서 제시한 인물들이 바로
지방화시대를맞은충청남도는수많은과제들을눈앞에두고있다.타지역과구별되고,타지역과
“호서산림”들이었던 것이다. 禮治란 왕도정치 실현의 구체적 내용으로 禮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의 경쟁에서 한발 앞서가기 위해 새로운 21세기를 힘차게 이끌어갈 ‘新 思考’와 ‘그 주역들’
정치형태였다.
이필요한시점인것이다.
그리고 호서유학사에서 또 하나 특기할 것은 우암 송시열의 적전이었던 權尙夏의 문하에서 이
정신과 얼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체가 없다. 특히 과거의 전통문화를 현대에 되살리기 위해서는
른바 ‘人物性同異論辯’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즉 人物性 異論을 주장한 南塘 韓元震(1682-
많이 생각하고 되새기고, 또 스스로 느껴야만 활용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우리가 현실적
1751)과同論을주장한巍巖李柬(1677-1727)이모두호서지역이배출한유학자였던것이다.
으로 얼마만큼 필요로 하고, 또 실용적으로 재활용하려고 하느냐와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과
는매우달라질수있을것이다.그리고그선택은남들이아닌우리가하여야한다는사실이다.
오늘 날 일부의 문화비평가들은 이러한 양반문화, 선비문화를 권위나 입신양명, 나아가 당파세
력, 봉건적 착취세력 등으로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만약 양반이나 선비의 정신이 그
런 것이었다면 충절의 행적에서 보듯 과연 목숨을 내어 던지며 환란을 자초한다든지, 도끼를 등에
지고자신의주장을끝까지관철하는행적은결코보일수가없었을것이다.그들은어떤의미에서
관념적인 것보다는 실천가이자 현실개혁의 이론가들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특권세력의 사회경제
적 독점에 반기를 들고, 향촌의 자율성을 추구하던 양심세력이기도 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조선시
대수백년은양반중심의시대가될수있었던것이다.
이들 선비 정신은 결코 보수적, 관념적이라고 평가될 성질의 것이 아니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개혁적, 혁신적이고 강경하여 그들의 주장이 보수진영의 강한 견제를 받을 정도였다는 점
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조선조의 충청도 선비정신에서 오늘날 올바르게 본받고 배
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 부족하고 퇴색된 이러한 현실 비판과 개혁정신을,
그리고도덕성을우선적으로되찾는일일것이다.
58
59

5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