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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대수의 자(字)는 수백(秀伯)이며 승사랑에 올랐고 부인은 신천강씨(信川康氏)이며 참봉 강계남(康
繼南)의 딸이다. 수원 이의동에서 염치읍 석정리로 낙향하여 살았다.
그의 후손들은 같은 안효공(安孝公)의 후손이 많이 사는 수원 이의동에도 살고 있으며 염치읍 방현
리, 송곡리, 온양 모종동 등에 산다. 묘는 염치읍 방현리(방수물) 학령(鶴嶺)에 있다. 음력 10월 15일
에 제사를 지낸다.
[61] 풍산심씨 심정방
| 沈正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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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풍산심씨(豊山沈氏) 15세이며 아산시 지역, 도고면 신통리 입향조이다. 현재
신통리에 거주하는 28세(世) 심수현(沈壽鉉, 82세)씨의 13대조이다. 선대는 경기도 김포 지역에 거
주하였다.
심정방은 조선 태종 때의 무신으로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으로 풍천군(豊川君)에
봉해지고 판공안부사에 올랐던 정양공(靖襄公) 심구령(沈龜齡, 1350∼1413)의 6세손이고 문과 급제
후 영흥도호부 판관을 지낸 심광필(沈光弼)의 증손이며 한성부 판관을 지낸 심언달(沈彦達)의 손자이
다. 아버지는 중종 29년(1534)에 생원시, 명종 4년(1549)에 문과에 급제하고 통훈대부로 승문원 참
교(參校)를 지낸 심연(沈淵)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혼원(朴渾源)의 딸이다. 생부는 남원에 살던
심담(沈潭)이며 계자로 왔다.
심정방은 1530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는 정숙(正淑)이며 증 가선대부 형조참판으로 풍
계군(豊溪君)에 봉해졌다. 부인은 평산박씨(平山朴氏)로 참판 박신(朴紳)의 딸이다. 그가 언제 어떤
연유로 인하여 도고 신통리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훈구파 집안으로서 사림파가 득
세하면서 낙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 1570년을 기준으로 440년 전으로 본다. 왜 이곳 도고였
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그의 6대조인 심구령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 지역 사패지에 있는데 심구령의
부조묘(不
廟-불천지위)가 언제 이 근처(선장면 신성리)에 세워졌는지 불명확하다. 그의 직계 후손
이 이곳에 자리 잡은 후에 옮겼을 가능성이 있고 이 지역도 사패지였을 수도 있다.
심정방은 동명(東明)과 동웅(東雄)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심동명(1581~?)은 무과에 급제하고
어모장군 오위도총부 도사를 거쳐 가선대부 행갑산도호부사에 올랐으며 남풍군(南豊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후사가 없어서 동생의 장남 완(
)을 계자로 들인 뒤 2남3녀의 손자를 보았다. 둘째인 심동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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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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