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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임욱
任勖
<1680(숙종 6년) ~ 1736(영조 12년)>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장흥 임씨 아산 입향조다.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원후
(元厚)의 16세손이다. 남해현령 식(湜)의 손자이고 1672년(현종 13)에 무과에 급제한 뒤 통덕랑에 오르고
병조판서에 추증된 수창(壽昌)의 아들이다. 자는 군보(郡輔)이다.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
관을 거쳐 용천부사, 영흥대도호부사 등을 역임했다. 영조4년(1728)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의 휘하로 출동하여 안성, 죽산 등지에서 싸워 이기며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분무(奮武-뒤에 양무<揚武>)원종공신에 책록되어 공신녹권(功臣錄券)과 영
정(影幀)을 하사받았고 뒤에 전라좌수사로 제수되었다. 후손들이 1980년에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산기슭
에 영정을 봉안한 영정각(影幀閣)을 건립했다.
<임욱 영정각>
<임욱 영정>
[97] 임원준
任元濬
<1423(세종 5년) ~ 1500(연산군 6년)>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고려 밀직사판사 군보(君輔)의 증손이고 거경(巨卿)의 손
자이며 견(肩)의 아들이다. 자는 자심(子深), 호는 사우당(四友堂), 시호는 호문(胡文)이다. 10세 때에 글을
잘 지어 신동으로 알려졌고 1445년(세종 27) 세종이 효령대군의 별장에 갔을 때 시를 지어 올려 칭찬을
받았으며 곧 집현전 찬서국(集賢殿撰書局)에 발탁되었다. 1447년 부사정(副司正)이 되고 1453년(단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1456년(세조 2) 식년 문과에 을과로 합격한 뒤 집현전 부교리가 되었으며 다음
해 문과 중시에 급제했다. 이 해(1457년)에 예문관직제학으로 명나라 영종(英宗)의 즉위를 축하하는 표전
문(表箋文)을 짓게 했는데 늦게 들어와 왕의 꾸중을 받았으나 명문장이라는 칭찬을 받고 용서되었다. 이
후 사헌부장령·필선·보덕·판봉상시사·호조참판을 거쳐 호조·예조·병조·형조참판을 역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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