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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지고 돌아와서 머리맡에 놓아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무를 하다 큰 상
처를 입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 왔다. 외로운 생각이 들은 허총각은 붉은 돌을 가
슴에 품고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눈을 뜨니 아프던 몸이 다 낫고 힘이 솟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허총각은 나무를 해놓고 잠시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학 한마리
가 날아와서 아름다운 선녀로 변하더니 "도련님! 빨리 집으로 돌아가셔서 붉은 돌을 가지고
건너마을 박진사 댁으로 가십시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신기한 돌입니다."
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허총각은 언젠가 크게 다쳤던 일이 생겼을 때 감쪽같
이 상처가 아물어 이상하게 생각했던 일을 생각하여 그 돌을 가지고 박진사댁으로 갔다. 몇
달 전부터 무남독녀 외동딸이 원인모를 병에 걸려서 앓고 있었다. 허총각은 박진사 집엘 찾
아갔으나 하인이 앞을 막았다. 그래서 사정사정 하였더니 그 집 하인이 박진사에게 하는 말
이 "웬 총각이 병을 고쳐 드리겠다고 와 있습니다. 미친 녀석이라고 생각이 되어 쫓아 내려
고 했는데 총각이 아씨의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만일 못고치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옵니
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박진사의 아내가 옆에서 듣다가 죽을 목숨 한번 총각에게 맡겨두
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자 총각을 데려 오라고 했다.
처녀의 가슴위에 붉은 돌을 올려놓은지 한시간 두시간……. 여러시간이 지났지만 처녀는 죽
은듯이 꼼짝 안했다. 이제는 틀렸구나 생각하고 있을때 백지장 같던 얼굴에 으레으레한 핏
기가 도는 것이었다. 온 식구들은 기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채 법석을 떨었다. 총각은 박
진사에게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나고 물으니 좋다고 하면서 소원을 말하라고 하였
다. 허총각은 "따님과 혼인하게 해 주십시요" 박진사는 놀라 딸에게 물었다. 딸은 좋다고 대
답했다. 허총각은 아내를 맞이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그후 붉은 돌은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 이 사실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욕심을
내는 사람이 많았다. 한 욕심장이가 훔치는데 성공해서 중국에 갔다 팔려고 압록강을 건너
다 깨끗이 물에 씻었다. 중국에 도착한 욕심장이 도둑은 한약방에 찾아가 붉은 돌을 보이며
사라고 하였다. 약방주인은 천하의 보물인 "환혼석 이라는
"
것이오하고 말하면서 못쓰게 되
어 버렸으니……. 주인장 무슨 말이오 "누군가가 물에 씻어 신비한 효험이 모두 씻겨 나갔
소이다. 환혼석은 쓸모없는 돌이 되고 말았소" 도둑은 헛 고생만 한 생각에 환혼석을 강물
에 던졌다. 환혼석은 비록 잃어 버렸지만 허총각은 아름다운 아내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한
옛 성현들의 말씀 그대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언젠가는 마음의 뉘우침을 갖
는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8)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
김옥균
(金 均)
철종 2년(1851)-고종 31년(1894), 이조 고종 대의 정치가. 호는 고규, 시호는 충달, 본관은 안
동, 철종 2년(1851) 1월 23일 충남 공주에서 출생. 고종 9년(1872) 문과에 장원급제, 옥당승
지를 거쳐 호조 참판에 이르렀다. 서구와 일본 문물에 감동하여 독립당을 조직하고 국정 개
혁을 주장하였다.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낙성식을 기회로 박영효, 홍영식등과 협력. 사대
당의 거두들을 죽인 후 신정부를 조직하였으나 청나라 주둔군의 방해로 3일만에 실패로 돌
아가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10여년을 지냈다. 그 후 청나라 세력으로 숙지를 달성하려고 상
해로 건너갔으나 1894년 3월 28일 상해 동해 양행에서 수구파의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되었
다. 청의 관헌은 홍을 보호하였고 군함 위원호로 시체를 한국으로 옮겼다. 조정에서는 반역
죄로 몰아 양화진서 시체를 찢는 주형에 처하였으나 이듬해에 새로운 내각이 들어서자 법무
대신서 광범, 총리 대신 김홍집등의 상소로 죄명을 씻고 관직이 회복되었다. 순종때에는 규
장각 대제학에 추종을 받고 관리를 보내서 제사를 지냈다.
이지함
1517(중종12년)∼1578(선조11년)의 조선 중기의 학자. 기인 <토정비결 의
>
저자. 본관은 한산,
자는 형백 또는 형중, 호는 수산 또는 토정 고려말의 학자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현령이치
의 아들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지번 밑에서 글을 배우다가 뒤에 서경덕의 문
하에 들어가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다. 후일에 그가 수리, 의학, 복서, 천문, 지리,
음양, 술서, 등에 달통하게 된것도 서경덕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1573년(선조 6년)주민의
추천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청하(지금의 포천) 현감이 되었고, 재직중 임진강의 범람을 미리
알아서 많은 생명을 구제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듬해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으나
1578년 아산현감으로 다시 등용되었고, 부임한 즉시 걸인청을 만들어 일정한 정착지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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