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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두명이아니라는것이다.국운을미리알고소리로알려주었던노거수는지금도건

남,
재하게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노거수 근처에 진악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흐르고 있는


데 그곳에 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에는 굴이 있었고 그 바위 굴을 사랑하는 연인이 통


과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마을에 전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그 바위가 하천공사로 없어


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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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리비석재
초현리에는다른지역에없는향선생을기리는계모임이있다.향선생이란서당의훈장
님을 지칭하는 말로 이 지역에서 칭하는 말이다.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는 아름다운 풍습
이현재도이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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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리는고려말엽성리학의수용에선구적인역할을했던윤택·윤귀생부자가은거하
여학문을가르쳤고,조선초에는단종때의충신곽사의후손을비롯한사족들이세거하
면서유림의고장으로일컬어졌다.이러한뿌리깊은도학의전통은한말부터일제강점기
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초현리 한 마을에서 무려 10여 명의 향선생이 등장하여 후
진양성에힘썼다.그결과20세기초현리마을문화의가장두드러진특색이라할수있는
문인계가결성되어향선생들의아름다운업적을기리고있다.
초현리의 향선생은 19세기 중엽의 난포(蘭浦) 김덕수(金德洙)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난포의 문하에서 배출된 죽포(竹圃) 신영석, 경암(敬庵) 곽병훈, 국당(菊堂) 김용, 학정(
鶴汀)정기섭등이사숙을열고후학교육에심혈을기울였다.그결과학문에뜻을둔문
생들이다투어초현리로모여들었다.그리고훗날같은서당에서동문수학한제자들을중
심으로각각계를조직하여스승의추모비를세우고학덕을기리는사업에적극적으로나
서게된다.해마다음력3월이되면각문인계마다날짜를달리하여비제(碑祭)를지내며
친목을다지는행사를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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