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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을하신부친



김태동은남일면초현리가고향이다.어려서부모님과4남2녀동기간이살았다.부친은


문필가였다. 이곳 저곳 현판 글씨를 많이 남기셨다. 한학을 하셨고 어려운 사람들이 공부
하러오면식사를제공하는등봉사활동을하셨다.농사도많이지으셨다.일꾼이둘이나
있었다. 6.25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오더니 부모님을 끌어다 공회당
앞에앉히고공개처형을하겠다고엄포하였다.부모님바로곁에있었기때문에그때의기
억이 선명하다. 마침 이웃 사람들이 이 좋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진정을 했다. 그
래서그랬는지처형이하루미루어졌다.그러다내일공개처형한다는청천벽력같은말을
듣고부모님이처형되는줄로만알았다.그런데무슨이유에서인지부모님은살아남으셨
고,두분다천수를누리시고돌아가겼다.부모님은목숨을구했지만일가인칠촌은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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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어렸는데 600고지로 끌려가 인민군에게 죽었다. 어린 나이에 절체절명의 순간을 목도
한 후 장기복무를 생각했다. 그래서 하사를 지원하여 교육을 마쳤는데, 갑자기 대위가 끌
고가더니만옷을벗으라고했다.이유도모르고옷을벗었더니,그가안되겠다는말을하
였다.중학교다닐때태극기문신을한것을보고한말이었다.이유인즉북한에간첩으로
보낼려고했다는것이다.문신덕분에북한으로가지않게되었다.어렸을때의기억때문
에투철한국가관이자리잡았고,그래서7년동안군복무를했다.
제대후에인삼재배를했다
전쟁으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고 최종 학력이 중2가 되
고 말았다. 21살에 군에 입대를 했다. 논산 연무대에서 훈련을 받고, 김해에 가서 공병교
육을 받았다. 그 후 대전, 조치원에서 근무를 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인민군에게 공개
처형당할뻔한사건으로인해군복무에더욱열심히였다.그래서사병으로가지않고하사
관으로 지원하여 7년간 군복무를 이어갔다. 논산 처녀를 만나 군복무를 마치자 마자 결
혼을 했다. 64년도부터 초현리에서 농사일을 했다. 논농사, 밭농사보다는 인삼농사가 소
득이많을것같아삼장을했다.삼을재배하여돈을벌었고그돈으로논2천평도구입했
다.그러나논농사와인삼으로2남2녀를키우기에는매우벅찼다.그래서직장을구해야
겠다생각하고,부천으로가경비일를하고,다시대전으로내려와아는사람소개로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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