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63페이지

57페이지 본문시작

회암서원 입지환경과 주변의 관련 암각체 고찰
57
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복원되지못하였
다. 다만, 유풍을 진작시키며 선현의 맥을 이어오던 조극선의 후손
조종호가안타까운생각을저버리지못하고있었다. 마침, 1896년4월
에 이충규 등 지역 유생들과 회암서원 무이천에서 봄 시회를 열고
소풍을갔다오다서원옛터앞사면바위를발견하고회암서원의유허
비설단을설립하여사라진회암서원의학풍과숨결을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말까지의농업정책과농촌근대화사업추진이꾸준히추진
되는상황에서봉림리의농업증산이우선시되자1977년옛서원터에
건립이 서원유허지 보존보다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서원저수지수리계’가조직되어저수지축조는계획대로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주자의 고향과 동일한 산세, 지형, 지명을 높이 평가해
건립된회암서원의입지환경과훼철18년후건립한‘회암서원유허비
설단’마저훼손되는과정을겪었다. 당시저수지축조가마을민의경
제희망이었음은부정할수없다. 하지만옛회암서원지에관한세심
한관심과노력을기울였어야하는아쉬움이남는다. 특히서원건립
후아름다운무이천반석바위(유허비설단앞에있는가장큰반석바
위는100여명넘는인원이앉을수있는크기였다)에깊은뜻이있던
다량의암각체가파괴수몰된것은소중한문화자원이망실된것이며
문화도의적 차원에서도 되새겨야 할 문제라 본다.

57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