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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자연환경과삶 ?55
이들의 고생은 겨울철과 농번기에 출역으로 인해 가중되었다. 우선 어민들은
홋옷을 입고 얼음 속에서 맨발로 석화를 캐고, 낙지를 잡았다. 이 시기에 민간
에는 목신이 보급되지 않았기에 겨울철 굴 채취의 고통이 심했음을 추정할 수
14)
있다.
그것은 관용어살[어전]의 역역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농번기인 6, 7월
에동원되어폐농이될정도였다.
해당내용은『호산록』해포조(海浦條)에서살필수있다.
천수만 인근에는 율리포, 흑서포, 인정포 등지에 관용 어살이 존재했다. 해당
어살은 큰 새우잡이, 붉은 새우잡이, 가을잡이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흑서
포의 관용 어살은 송시리의 관전살로 그 존재가 확인된다. 바쁜 농사철에 어살
로 출역해야 했기에 민가에서는 폐농이 되었으며, 그에 따른 백성들의 고통이
심했다고기록되어있다.
이러한 고통은 어살 제작과 관련해서 유추 가능하다. 어살은 봄과 가을에 각
기 제작하는데, 어살 제작 도구인 대나무 벌목부터, 대나무 운반, 어살 제작, 어
살제작에 필요한 새끼 꼬기, 제작된 어살을 먼 어살터로 옮기기, 어살세우기 등
으로 1~2개월이 소요되는 여러 작업들에 많은 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 어살 제작 시기는 바쁜 농번기이었기에 봄철 보다 더없는 고통으로 간주
되었던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어획된 어물이 거래되는 장시의 모습을 통해서 이 지역의 어
로활동을 짐작해 보자. 18세기 기록인『임원경제지』에 수록된 장시와 거래 물
품현황을표로나타내면아래와같다.
14) 천수만의 일부 지역에서 확인되는 목신은 간월도, 창리, 칠전리, 마룡리 등의 굴 생산이 많은 지역들에
서만 확인되며, 갈마리, 송시리, 가사리 등의 굴 생산이 많지 않았던 지역들에서는 맨발로 굴을 채취했
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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