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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행실은모나며지킴은확고하고논의는바르다.충효(忠孝)의대절을잡고복리의혜택이남
에게미치기를생각하였다’라고썼다.
숭록대부행의정부좌참찬겸판의금부사지경연춘추관사예문관제학장주황승원(崇祿大夫
行議政府左參贊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事藝文館提學長洲黃昇源)은명(銘)을지어
‘공의 큰 절개를 살펴보니 곧은 도(道)로 나랏일에 순사(殉死)하였네. 적신(賊臣)이 요로
(要路)에 있어서 우리의 충신(忠藎)한 무리를 장해(?害)하니 공이 맹세코 앞장서서 탄핵
하여 시퍼런 칼날도 밟을 만 하였네. 조야(朝野)가 모두 위태롭게 여겨 떨었건만 공은 태연
하였네.홀(笏)을바로하고조정의반열에서서뛰어난인물을보호하였으며,사나운풍랑의
바닷길을배저어행조(行朝)에조근(朝覲)하였네.충성(忠誠)과신의(信義)를짚고황제의
사신의접반관이되었으며선·정(宣·靖)두능의개봉도감의낭청이되었더니점차로허구의
헐뜯음이침범하여부목(府牧)으로전전하면서저백성의노약을은혜로돌보았네.육년동
안변방의유배생활에서시읊으며구레나루희어졌네.저반대당의무리는비록마음에달
게 여겼겠지만 공은 오히려「견고한 돌처럼」닳지 않았네. 효성의 소치로다. 어버이의 상을
집에서거상(居喪)할수있었으니하늘이슬프지않았네.나의명(銘)이과대함이아니니길
이후세가이를믿으리라’라고충심으로공을기렸다.
공은젊은날에재종조되는북애이증의문하에서수학하였는데땀에흠뻑젖어바지가썩
을정도로학문을연마하여훗날성리학에깊은경지를드러냄으로써주위사람들의존경을
받았다.
관직에있을때공은자신에게닥칠지도모르는위험을피해가지않고불의한일에대하여
목숨을걸고상소를올려잘못을시정하려힘썼다.
공은이렇게사회정의를실현하기위하여그절(節)을휘지않았던것이다.시대를넘어곡
학아세(曲學阿世)하는무리는언제나세상에섞여있는법이어서,공의이러한성향으로인
하여질시의대상이되는경우가많았다.
자연스레관직의세계에서저항을받는경우가많았고,직위상승의기회에서배제되고밀
려났다.
이렇게 고난과 역경이 수시로 다가왔지만 결코 에둘러 돌아가지 않았던 공의 기개는 침묵
가운데당시뜻있는사람들의찬사와지지를받았다.
돼지의행복보다소크라테스의고뇌를택하는것이인생을진지하게사는사람들의모습이
다.다가오는고난과위기를맞이하면서도피하지않고자신을일으켜세우면서정면으로맞
서,인간의보편적인윤리를지키는가운데의연하게사는사람이야말로비록높은지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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