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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먼저 왔고 그것이 언제 어떤 사유로 인한 것인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혼인 및 처가와의 관련도 아
직은 알 수 없다.
신응사는 두 아들 혜(
)와 력(
)을 두었다. 이 중 신력은 송학리의 백부 신응락의 계자로 갔으며
신력 또한 아들이 없어서 신혜의 넷째아들 경준(慶濬)을 계자로 들였으니 이 지역 고령신씨는 실질적
으로 신응사의 후손이 되기 때문에 신응사를 입향조로 보았다. 그와 직계 몇 대의 묘는 송악면 종곡
리에 있다.
신혜는 철준(哲濬) 등 아들 넷을 두었고 신경준도 아들 넷을 낳았으니 이후 신응사의 후손이 많이
늘었다. 송악면 종곡리와 송학리를 거점으로 하고 온양과 배방 수철리 등 여러 곳에 널리 퍼지게 되
었다.
-신응사 묘비-
[59] 청송심씨 심광렴
| 沈光濂
<1595년(선조28년) ~ ? >
청송심씨(靑松沈氏) 13세로 안효공파(安孝公派) 음봉면 산동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호성원종훈(扈聖原從勳)에 책록되고 감찰에 증직된 심해(沈諧)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東
萊鄭氏)로 도사(都事) 정운길(鄭雲吉)의 딸이다.
심광렴의 자(字)는 희현(希賢)이고 음직(蔭職)으로 부정(副正)을 지냈다.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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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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