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28페이지

567페이지 본문시작

갤러리를경영하는매부는재력가였다.60년대당시서울에서주유소를두곳이나운영



하고 있었고, 운수업도 하였다. 그러나 갤러리 경영에 집중하여 주유소도 팔고 버스도 한


대팔았다고했다.
유명한천경자화가도화랑을자주찾았다.요즘과달리유명화가의작품도그렇게높
은 가격으로 거래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 부인이 그림을 많이 샀다. 그러면 한남동 자택
으로배달을해주었다.지금은그림도재태크의일환이지만예전에는드문일이었다.화랑
을즐겨찾는사람들이있었다.5.16주체세력들이었는데그들은예술작품을소장하거나,
제테크와는거리가멀었다.그림을예술로취급한것이아니라뇌물로이용해윗사람들에
게줄을서기위한도구로취급하였다.
가뜩이나어려운상황에오일쇼크가불어닥쳐갤러리시장의판도를바꾸어놓았다.더
567
군다나 매부는 가난한 화가를 지원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수입은 줄고 지출
이많다보니갤러리운영이어렵게되어75년도에화랑문을닫았다.
매부의도움으로수원으로자리를옮겨관세사로일했다.관세사는해외에서들어오거
나 국내에서 나가는 물류에 관세를 책정하는 일을 했다. 1975년에 시작하여 2017년까지
근무했다.
극작가임희재-‘아씨’의모델은?
유명한극작가임희재선생은금산군남일면성곡리가고향이다.1969년이후1971년에
위암으로세검정에서작고하기까지서울에서살았다.사촌중이리에서공부하고교사가
된분이임희재작가였다.그러나오래교직에있지를못했다.부인이있는데새사람을보
았기때문이다.소위말하는스캔들이있어교단을떠나게되었다.
새로얻은분은술집을하던분이었다.세검정집에막걸리가항상있었다.직접빚은것
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문하면 항상 술 한잔을 권하곤 했다. 작가는 말씀이 없
고성품이온화한분이었다.작품활동도세검정에서왕성하게이루어졌다고보면된다.
세검정집은암반위에지은2층구조로된당시로서도고급주택이었다.암반밑에서물
이나오는데그곳에술단지를놔두고매일조금씩마셨다.그때작은부인하고살았던기
억이난다.임동진은화랑일을하고있었을때인데화랑에일이많지않아자주심부름을

567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