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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잘맞아,근동에과일맛이소문이나재미를보았다.

남,

용강,용강서원,지웃재



용화리 금강을 용강이라고 부른다. 용화강이라고도 하지만 용강이 더 입에 붙었다. 부


리면평촌리,신촌리,어재리를지나급하게커브를돈다는마달피협곡을빠져나온금강


은 용화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용화마을과 닥실과의 사이에 여울이 있어 용강은 그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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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호수다.
용강서원은1680년(숙종6)에건립되었다.송시열,송준길,김원행,유계,송명흠의위패
를배향했다.서원철폐령에의해헐리고광복뒤에다시복원되어오늘에이르고있다.용
강서원은금산사림의자존심이었다.워낙경치가좋은곳에위치하고있기도하지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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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쟁쟁한 분들을 모신 곳이라 그 위상이 대단했다. 부리면의 양씨들과 제원면의 금
산김씨들이주축이되어운영했다.예전에는강건너화상골에서원소유의땅이있어소작
을 주고 서원 관리를 맡겼다. 당시에 서원관리를 맡으려는 경쟁이 대단했다. 화상골의 농
토를지어먹으면서제향에들어가는경비에보태야했지만그래도농토가없는사람들에
게는매력적인일이었다.
서원가까이에있는지석묘근처에사장(射場)이있었던것으로보인다.예전에용강서
원에출입하던선비들이주고받았던시문을엮은시문집이전하는데그내용에지석묘근
처에서활을쏘았다는내용이자주등장한다.
용강서원은제원에서닥실(저곡리)을지나용화리에이르고용강서원앞용강을건너영
동으로통행하는곳에위치하고있다.용강을나룻배로건너화상골계곡을타고올라가면
산마루에돌로쌓은서낭당이있었고그옆에아름드리서낭나무가있었다.서낭나무는벚
나무였던것으로생각된다.지금도나무의둥치가남아있어그크기를가름할수있다.고
개를넘으면지내리로넘어가는계곡이나온다.현재는광평저수지가있어모습은달라졌
지만이길이금산과영동을연결하는주도로였다.
용화 주민들에게는 이 길이 매우 익숙하다. 이곳에 용화리 송계에서 관리하는 산이 있
기 때문이다. 금산에는 다른 지역에 없는 독특한 송계라는 조직이 발달되어 있다. 주민들
의동제형식인송계는산을매개체로하여조직되었다.마을공동소유의산을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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