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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가 내려져 지금까지 마을 전해지고 있다.
-신계형의 손부 청송심씨 정려비와 현판-
[58] 고령신씨 신응사
| 申應泗
<1546년(명종1년)~ ? >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고령신씨(高靈申氏) 12세로 귀래정공파(歸來亭公派) 아산시 지역, 송악면 종
곡리 입향조이다. 현재 종곡리에 거주하는 24세(世) 신명우(申明雨, 73세)씨의 12대조가 된다. 선대
는 주로 서울에 거주하였다.
고조는 생진과와 문과를 같은 해에 급제한 뒤 대사간을 지냈던 청백리(淸白吏) 귀래정(歸來亭) 신말
주(申末舟, 1429~1503)이다. 신말주는 신숙주(申叔舟)의 동생이며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전북 순창으로 들어가 귀래정을 짓고 은거하였으나 세조의 분노와 형의 권유로 잠깐씩 몇 차례 관직
에 나왔으나 곧 사직하고 순창으로 돌아갔다가 성종 즉위 이후 다시 출사하였다.
증조는 순창에 은거했던 증자헌대부 신홍(申洪)이며 조부는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오른 청백리 정민공(貞敏公) 신공제(申公濟, 1469~1536)이다. 아버지는 첨정
을 지낸 신굉(申
, 1520~1572)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가평부정(加平副正) 이징(李澄)의 딸이다.
그는 응락(應洛), 응하(應河), 응수(應洙), 응사(應泗) 등 4형제 중 넷째아들이다. 이들 중 첫째 신응
락(1540~1634)은 송악면 송학리에 자리 잡았고 넷째 신응사는 송악면 종곡리에 들어 왔다. 둘 중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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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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