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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50] 열녀 동래 정씨 <鄭氏>
1649(인조 27) ~ 1728(영조 4)
시집살이 고초 겪으며 시어머니와 남편 병간호 극진했던 열녀
조선 후기의 효부(孝婦)이며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아버지는 정은(鄭?)이고 어머니
는 거창 신(愼)씨이다. 신창현에 살았던 선전관 오도빈(吳道彬)의 아내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부모를 떠날 수 없어서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할 만큼 부
모를 극진히 섬겨서 고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결혼 시기를 놓칠까 걱정이 심해지시
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부모님의 뜻에 따라 혼인을 하였다. 시집을 간 뒤에
는 이미 홀로 되신 시어머니에게 효를 다함은 물론 남편 또한 정성으로 섬겼다. 고모와
시동생 등 시댁 식구도 많았으니 시집살이의 고초가 심하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모두 병에 걸렸을 때 그는 지성으로 극진히 간호하였다. 그러다가 시
어머니가 세상을 뜨니 애통함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고 예를 다해 상을 치렀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던 남편도 얼마 뒤에 숨을 거두었다. 정씨는 남편의 뒤를 따
르기 위해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자식들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세상을 뜰 때까지 선조들이 이룬 집안을 잘 지키며 살았다. 그의 이러한 효행과 정
절을 칭송하며 많은 선비들이 조정에 상소하여 마침내 1736년(영조 12)에 효부 정려가
내려졌다. 신창면 신달1리에 정문이 세워졌는데 몇 차례 고쳐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효부 정씨 정려 명정현판(위)과 정려중수기(아래) 및 비(碑: 앞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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