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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골 마을만 현재 가구수는
85
호인데 민속마을 전통 건조물로 지정받은 호구수는
65
호라
고 한다 이곳에서 예안 이씨들이
14
대째 살고 있으며 조선 명종때라니 서기
1545
년 약
455
년경 형성된 것으로 추측이 되며 예안 이씨가 터를 잡기 전에는 육씨와 강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마을 형성년대는 훨씬 이전이 될 듯 싶다 마을은
78
년도에 도지정 민
속마을에서
88
년도에 중앙 정부 전통 지정 민속마을로 되었다고 한다
. 30 40
년 전까지
만 해도 예안 이씨가 주를 이루었으며 현재는 다양한 성씨가 들어와 살고 있다 현재는
육씨와 강씨는 거의 없고 예안 이씨가 대부분이다
삼막골마을은 박씨들의 집성촌인데 밀양 박씨와 순천 박씨는 아랫 삼막골에 함양 박씨는
윗삼막골에 살고 있는데 함양 박씨가
13
대째 밀양 박씨가
10
대째 살고 있는 것으로 보
아 함양박씨가 가장 먼저 들어와 터를 이루었으며 이 마을의 역사는 서기
1600
년경 약
390
년쯤으로 추정된다
새마을 마을의 경우에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이곳에 세 집이 살고 있어 세집매로 불리우다
송악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그곳에 살던
20
가구 정도를 정부에서 새마을에 지어주어 살기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가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터를 잡은 분은 정인화씨로
2
마을 이장을 하였으며 마을에서
5
1850
년경 약
150
년 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이 가구수가 늘어나게 된 것은
50
년정도밖에 안된다
6)
지 명
오양골 마을 지명
외암골
시흥역이 있을 때 말을 가두어 먹이던 곳으로 외양골이라 하였는데 인종 때 학
자 이간이 살면서 그의 호 외암을 따서 외암골이라 하였음.
구산리
오암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 산막이 있음
설화리
설화산 밑에 있는 마을
설화산
산의 정상이 붓끝 모양으로 몽뚱하다 하여 문필봉이라 하며 이곳에서 많은 문필
가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또 이곳에는 칠승팔장 지지의 명당이 있어 예로부터 투장이 성행
하여 가뭄이 들곤 하였다 하여 지금도 가뭄이 들면 투장한 곳을 찾아 파헤치고 기우제를
지내는 관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음.
찬샘골
오양골 뒤에 있는 골짜기 찬샘이 있음
북바위
찬샘골 위쪽에 있는 바위 북처럼 생겼음
북박골
북바위가 있는 골짜기
삼박골
오양골 뒤에 있는 골짜기로 큰 바위가 있다
반석
오양골 입구에 있는 반석 냇바닥에 깔려 있고 마을쪽으로 반석들이 누워있는데
위반석에는 외암동천 넉자의 대자와 그 옆에 이용찬서 의 작은 자를 새기었고 아래 반
"
"
"
"
석에는 동화수석 의 대지와 이백선서 의 소자를 새기었음
"
"
"
"
외암 부조묘
오양골에 있는 영조때 학자 문정공 외암 이간의 불천지위 사당
이간 신도비
오양골 오른쪽 산기슭에 있는 비 영조때 학자 외암 이간의 묘에 세웠는데
그 제도가 매우 장대함.
송암사
설화리에 있는 절로
1936
년에 세워졌다 불타고 없어져 새로 절을 지어 지금은
설화사로 불리고 있음.
미륵불
송암사 터에 남아 있는 불상으로 높이
210cm,
넓이
65cm
로 당당한 체구이며
설화리 뒤에 있음.
삼막골마을 지명
산막골
외암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 산막이 있었음
윗산막골
산막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윗 산막골이라 함
아래산막골
산막골 아래쪽의 마을이라 하여 아래 산막골이라 함
열승정
아산군 송악면 외암리에 있었는데 이사종
의 건축
으로 유
명하였다 이사종은 예안인
으로 선묘조
에 별제
하고 친상
으로
인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화산
남쪽에 정자를 짓고 이름을 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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