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16페이지

55페이지 본문시작



禮山의
어함경도길주군임명남측에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를세웠다.
이후에1905년러일전쟁시승리한일군이이비문내용을못마땅히여겨이비를일본으로
반출해야스꾸니신사한모퉁이에방치하고있었으나정부의결단으로환국하여복원하고
함경도길주군임명면원자리에세웠다.(현북한함경북도김책시임명동)
장군의 생애에 그 배위를 약기한다. 공의 배위는 우봉(牛峰) 이씨로 장군과 혼인 후 3개월
만에헤어져17년간시댁성지동에사시다가여자의칠거지악의하나인무자거가마음에걸
리고 또한 장군의 안부도 걱정 조정에 글을 올리니 선조께서 특별히 윤허하시어 역관에 분
부,부인의행차에침식을보필하라고하명을내리셨다.
부인은시비를대동하고10여일후에마천령에도착,객사에여장을풀고쉬는데밖에서여
러사람들의말중에부군인장군의목소리를듣고종자를식혀확인하니장군께서시비에게
여기가어디라고감히아녀자가전장터에오느냐고나무라며빨리모시고가라고호령하시
니할수없이발길을돌리면서시한수를장군께드렸으니그내용은다음과같다.
걷고걸어서마천령에이르니
行行遂到 磨天嶺
동해바다의물갓은끝이없네
東海無涯 鏡面平
천리길을여자로무슨일로왔는고
千里婦人 何事到
삼종지의무거워이한몸가벼이하였네.
三從義重 一身經
시비를 시켜 이 시를 장군에게 드리고 집을 향해 오는데 십 여리도 채 못와서 장군이 모셔
오라는 분부로 부인은 다시 병영으로 들어가 생활하시면서 2남 1녀를 두시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일어나자부인과자녀를고향으로보내었다.
부인은 고향에서 장군을 기다리던 중 선조 33년에 장군의 애마가 장군의 두안(頭顔)을 물
고오니부인이이를확인하고이웃에칠전곡(현봉산면옥전리옷밭골)명당에두안을안장
하고그아래에애마를묻어주고그자손들이지금도벌초를하고있다.현종조장군의록훈
이이루어짐과함께조정에서부인의열행의정려문현판을내리고그절의를높이찬양하고
찹쌀과청기와3장을하사하셨는데그후청기와2장은도난당하고1장만보관하고있다.
55

5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