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5페이지

55페이지 본문시작

<번역문>
이공진구위성묘기
철종 계축년(1853) 가을에 김영술이라고 하는 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어 감히
호탕한 기세를 믿고 그 아우와 조카를 교궁 뒤 언덕 마땅히 금해야 하는 곳에 장사지내
니 대개 떳떳한 사리를 갖춘 자가 누가 분하고 한탄스럽지 않은 이가 있었겠는가?
온 고을의 사림이 여러 번 모임을 열어 현과 부에 하소연하였으되 공적으로 처결되지
못했으니 이진구가 분연히 말하기를 “저들이 지금 세도를 끼고서 성현을 모독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내가 비록 내 몸이 베어지고 가슴이 구멍이 나더라도 어찌
감히 두려워 위축되리요?” 이에 사사로이 무덤 2곳을 파헤쳐 관을 지고 관가에
자수하니 이를 알게 된 고을의 우두머리가 김영술과 사통함이 있어 옥에 가둔지
사개월동안 매일 심한 장형(杖刑)을 가하여 살이 부서지고 뼈가 드러났다. 실오라기
같은 목숨이 아직 남아있더니 더 이상 가혹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옥중에서
죽었으니 이때가 12월 14일이었다. 원근각처의 선비들이 의롭고 가련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어서 금품을 내서 후하게 장례를 치루니 만사(輓詞)가 천수나 되었다. 또
묘전(墓田)을 사서 그것으로 제사를 받들고 매번 성현묘당에 제사를 받들 때에 반드
시 제수를 그 집에 보내어 성현을 흠모하는 자취에 표한 것이 지금까지 80여년이나
되었다. 오호라 공은 평소에 효도와 우애로 칭송을 받았고, 의를 붙잡아 도에 몸을
바친 것이 또 저와 같이 탁월하고 뛰어났으니 오직 도를 지키고 성현을 존경하는
공이 오래되어 사라질까 두려워서 이를 간략히 기록하여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공은 효령대군의 후예이다.
공자 탄생한지 2485년 갑술(1934) 8월 일
장의 안동 후인 김병식 삼가 적다.
직원 전재구 장의 김병식 서용훈 이기태 손진창 유림 이근의 서영심 서태훈 이창세
윤경학 김진구 이정훈 김상욱 김석한 소진두 이병길
◎ 문묘중수기
문묘중수기(文廟重修記)는 1954년 양전(梁琠)이 글씨를 써서 걸어 놓은 기문이
다. 기문에는 삼가 적다. 기문에는 은진향교의 전교이었던 김익권(金益權)이 허물어
편액과 기문
55

5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