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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여산송씨 송정원
| 宋廷元
< ? ~ ? >
여산송씨(礪山宋氏) 22세이고 정가공파(正嘉公派) 영인면 역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嘉
善大夫) 만준(萬浚)이며 어머니는 전주(全州)이씨(李氏) 방(芳)의 딸이다.
송정원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전하지 않는다. 증(贈) 군자감정(軍資監正)이며 부인은 진주 강씨(姜
氏)이다. 묘는 몇 년 전에 화장을 하였다.
[57] 평산신씨 신계형
| 申季衡
<1537년(중종32년)~1592년(선조25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평산신씨(平山申氏) 20세(世)로 사간공파 아산시 지역, 둔포면 운용리 입향
조이다. 현재 둔포 운용리에 거주하는 32세(世) 신억균(申億均, 65세)씨의 12대조이다. 그의 선대는
경기도 양주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그가 둔포에 온 시기와 연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약 450년 전쯤으
로 추정한다.
그는 사간공파(思簡公派) 파조인 자헌대부 호조판서 신호(申浩)의 5세손이며 증판중추원사 신경종
(申敬宗)의 현손, 형조도관과 정랑을 지낸 신수복(申守福)의 증손, 선략장군 신영보(申永保)의 손자이
다. 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낸 신적(申摘, ?~?)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晉州柳氏)로 부사 유익후(柳益
厚)의 딸이다.
신계형의 자는 정평(正平)이며 생진과를 거쳐 청산현감(靑山縣監-충북 옥천)을 지냈기 때문에 그
를‘청산공’
으로 칭하고 후손들은‘청산공파(靑山公派)’
로 칭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592년에 임
진왜란이 일어난 뒤 순절했다고 한다. 묘는 둔포면 석곡리에 있다.
부인은 여흥민씨이며 민구경(閔具慶)의 딸이다. 외아들 회(澮, 1548~1629)를 두었고 신회가 두 아
들 광립(光立)과 광철(光徹)을 낳았다. 이들 이후에 후손들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신계형의 후손들
은 주로 둔포면 일대와 충북 음성, 진천 그리고 각지에 있다.
그의 손자 신광철(1606~?)은 부사과를 지냈으며 부인이 열녀정려가 내려진 청송심씨(靑松沈氏,
1607~1636)로 심원회(沈源淮)의 딸이다. 청송심씨는 병자호란 때 피난길에 올랐다가 친정어머니가
오랑캐에게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대신 잡혀서 어머니를 살린 뒤 저항하다가 살해당하였다. 이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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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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