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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와 아산 1, 2리를 관통하는 하천과 인가가 많이 들어서 있음.
휴양림 : 최근에 영인산이 자연 휴양림으로 지정되어 국 도비
, 시비등 50여억원을 투자하
여 아산관, 체력단련시설, 사계절 눈썰매장, 극기 훈련장, 헬기장,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탑
등을 설치하여 관광 휴양의 명소로 변모하고 있음.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탑 : 영인산 엄봉(연화봉 이라고도함)에 세워졌고 1998년 8월 14일에
준공을 하였음.
갈마지 통미
<
> : 아산저수지 제방 동쪽이 되는 외딴 산, 말이 물을 먹는 형국이라고도함. 그
래서 저수지가 생겼다고 전해짐.
절 골 : 영인중학교 뒤에 있는 골짜기, 인조때 이민구가 이곳으로 귀양와서 살았다고 하여,
옛 절터가 있고 공민왕 태를 모셨다가 옮겨갔다고 전해짐. 전에 동심사가 있었는데 폐사되
고 현재 새로이 대웅전을 준공하여 동심사라고 명명함.
목탁골 : 아산 2리 현 양조강 뒤쪽의 골목으로 그곳 형상이 목탁같이 생겼다하여 목탁골이
라고 하였으며, 일설에는 사형을 집행할 적에 망나니 등이 목을 쳤던 곳으로 목탁골이라 하
였다 전한다.
당나무골 : 아산 2리 이철수이장의 집 부근에 옛날에 당나무가 많이 들어서 있어 당나무골
이라 하였다 전한다.
하천 뚝 : 아산리 면소재 중심으로 흐르는 양 쪽의 뚝을 말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하천이 좁
았으나, 김영진이 아산군수로 재임시에 면민들에게 부역령을 발동하여 하천을 넓게하고 양
뚝에 축대를 쌓아 홍수 피해를 막았다고 함. 부역 당시에는 부역의 소통을 느끼어 원성과
원망이 많았으나 홍수시 피해를 모면한 후로 현재까지 하수가 원활히 처리되고 았으며 김영
진은 안성군수로 전임하자 안성에서도 부근의 하천에 뚝을 쌓아 홍수 피해를 사전에 방비하
였다고 한다. 지금은 하천을 정비하고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음.
부처 바위 : 영인산 북동쪽에 있는 바위. 300m가량 죽 벌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부
처처럼 생겼음. 아산이란 지명의 어원이 되는 어금니 바위, 아기업은 바위라고도함. 신증동
국여지승람에는 "속설에 이르기를 이 바위로 인하여 수령은 어리석은 미치광이가 되고, 향
리들은 모두 흉악하고 간사하다."고 하였고 어떤 사람이 일찍이 그 바위에 "괴석이 신기한
부처를 이루어 삼년동안 다섯원을 갈려 보냈다네, 강바람이 부끄럼이 있다면, 눈을 몰아쳐
산의 얼굴을 가리우리라 고
"
글을 써 놓았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러한
글은 확인 할 수가 없었다. 세조 5년(1495년)에 충청도 관찰사 황효원이 나라에 아뢰어 아산
땅을 갈라서 온양, 평택, 신창에 붙이고 관사와 관청 논 밭은 그때 좌익공신 황수신에세 주
었을때도 이 바위의 속설을 빌미 삼았으며, 또한 선조때 명현 토정 이지함이 통인에게 해를
입은 것도 이 바위의 탓으로 전하고 있으나 호사가들이 입담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 사 : 성황당, 시거소, 교궁, 관노청, 서원청, 장청, 형방, 사창, 삼문, 현사, 군고, 객사, 향
청, 작청, 여단, 관청, 내아, 사령방, 책실, 동헌, 흡창작, 염성문, 사직단, 문루, 옥정여,포수청
동 헌 : 현재의 영인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처음에는 동헌이 이곳에서 2리 떨어진 지점
에 있었는데 토정 이지함이 이것으로 옮기었다 한다. 현감이 집무를 하던 곳으로 현감 송병
하가 건축한 것은 계유년(1783년) 화재로 전소 되었고 현감 윤경열이 감영에 보고하여 중건
하고 기문을 지어 인민당이라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아산군 청사로 쓰이다 1922년 아
산군청이 온양읍으로 옮겨가자 영인 면사무소로 사용하다 매각되었다.
관호정 터 : 동헌 남쪽에 있었으며 현감 이태진이 세웠던 정자로서, 이를 노래한 제영 시들
이 여러편 남아 있다.
망곡 터 : 국상이 있을 때 현감이 북향하여 곡을 하였던 곳이라고 하며, 현재는 감리교회가
있다. 교회를 짓기 전에는 일본이 승리한 청일전쟁을 기념하여 세운 아산일청전적 기념비가
해방 뒤까지 서 있었고 지금은 아산리 감리교회가 있다.
빙고 터 : 영인 농협에서 동남방 100m지점이 빙고터라고 구전 되며 지금도 그터가 남아 있
다. 근처 논에서 겨울이면 어름을 떠다가 빙고 지하에 저장하였다가 여름철에 사용하였다
한다. 이곳은 특이하게 지하가 냉열이었다 하며, 후세 사람이 잘모르고 이곳에 시신을 매장
하였는데 유족들 꿈에 망자가 나타나 추워서 못견디겠다고 하여 이장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사직단 : 사단과 직단으로 구분되는데 "사 는
"
토지의 신을 뜻하고 "직 은
"
오곡의 곡신을 의
미한다. 예로부터 나라를 새로 세우면 나라와 백성들이 복을 비는 사직단을 새로 꾸미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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