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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포구의역사를써내려가는방우진씨일가


방우진 님의 일가는 증조부님 때인 1920~30년대부터 한진포구에 정착하여 바다와 함



께 살아가는 삶을 시작하였다. 한진포구는 현재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한진리에 있는


포구로삼국시대에는당나라와해상무역을담당하는항구였을정도로규모가큰곳이었


다.1960~70년대에도인천을오가는여객선이다닐정도로해상교통의요지인곳이다.최


근에는서해대교의건설로인해수도권에서의접근이더욱쉬워진곳이다.방우진님은어


린시절부터이런한진포구에서,초대어촌계장인아버지를따라준치,삼치,꽃게등을잡



으며 생활을 하였다. 그 후로 본인이 한진포구의 어촌계장으로 활동하며 김 양식, 바지락

축제, 한진포구 뉴딜 300사업 등과 관련하여 한진포구 어업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
을기울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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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어획량을자랑했던어린시절의한진포구
방우진 님의 어린 시절이었던 1960년대 한진포구는 어항으로 엄청난 호황이었다. 대표
적인어획물로는준치,삼치,꽃게,숭어,민어,농어등이다.특히5월달에는준치가성어를
이루었는데, 이 시기에는 충남지역뿐 아니라 경기도 일대에서도 많은 어선이 준치를 잡으
러아산만쪽으로진출할정도였다.준치는서천앞바다에서부터아산만에이르는지역에
서주로잡혔고5월부터6월하지까지많이잡혔는데하지즈음에서는준치가아산만에서
산란을하고빠져나가기때문에그때부터의준치는상품가치가떨어진다.준치가성어를
이루는5월경에는어획량이너무많아다팔지도못했다.조류를이용해서준치를잡았는
데밀물과썰물이바뀌는3시간여동안어획이이루어진다.이짧은시간동안잡는어획량
은천마리단위로세어야할정도로많았다.준치는가시를제거하고회덮밥으로해먹거
나소금구이,맑은탕을끓여서먹는방법이있었다.
꽃게 또한 어획량이 어마어마했다. 그 당시에는 냉장, 냉동시설이 어선에 마련되어 있
지않아서잡은꽃게를보관하는것에큰어려움이있었는데할수있는보관방법은짚으
로 만든 가마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잡은 꽃게를 가마니에 넣고 바닷물을 뿌려 보관기
간을 조금 늘리는 방식이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장사치들이 한진포구에 오지 않아 판
로가 막혔다. 이때에는 잡은 꽃게들을 방우진 님 아버지의 연락선으로 모아 논에다 뿌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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