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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49] 열녀 동래 정씨 <鄭氏>
왜적 침입에 정절지키려 바다에 빠져 죽다
조선 중기의 열녀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아산현에 살았던 심해(沈諧)의 부인이
다. 정유재란(1597년) 때에 배를 타고 전라도 영광으로 피난하던 중 칠산 앞바다에서
왜적들의 배에 에워싸였다. 정씨는 위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붙잡혀 치욕을 당하
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세 살 난 아들 심광렴(沈光?)을 노비 복이(福伊)에게
부탁하고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때 같은 배에 있던 다른 부녀자들도 이를 보고
뜻을 같이하여 바다에 뛰어드니 모두 12명이 빠져 죽었다.
정씨의 아들(심광렴)은 다행히 화를 면하였고 뒤에 집안을 크게 일으켰다. 이러한 내용
이《동국신속삼강행실도》
(1617년)에 실렸으니 후에 심씨의 손자 심과(沈科)가 조정에
요청해서 1693년(숙종 19)에 그에게 열녀 정려가 내려졌다. 음봉면 산동리 뫼골에 있
는 정려 안에는 그의 정려와 정려비 외에도 함께 죽음을 택한 사람들을 적어놓은‘12열
부기(烈婦記)’
도 있다. 옆에는 노비(여) 복이의 고마움을 기리는 비석도 세웠다.
열녀 정씨 정려 현판(왼쪽)과 충비 복이의 영세불망비(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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