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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서 졸하였으며 묘는 선대가 거주해온 논산 가야곡에 있다. 어머니는 평강 채씨(平康蔡氏)이며 채
계여(蔡繼與)의 딸이다.
손길은 급(伋), 억(億), 길(佶), 탁(倬) 등 네 아들 중 셋째 아들인데 위로 두 형이 일찍 세상을 떴다.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가 남원부사로 갈 때(1577년-선조10년) 그가 어머니 채씨를 모시고 탕정 장목
(족보에는‘창복촌-昌福村’
)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가 15세 때이니 어머님을 따라 들어
왔다고 본다. 어머님은 장목 마을에 묘를 모셨다.
인근 마을인 황골(염치 대동리) 등에 채씨가 거주하지만 약 300년 전부터이고 그의 어머니 채씨는
경기도 안양 지역 출신이어서 관련은 없다. 그가 이 마을로 들어온 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손길의 자는 희숙(喜叔)이며 통덕랑(通德郞)으로 참봉을 지냈다. 부인은 기계유씨(杞溪兪氏)이며 유
운(兪運)의 딸이다. 그는 불과 26세에 일찍 세상을 떴다. 다행히 홍수(弘壽), 홍복(弘復), 홍조(弘祚)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장남 손홍수는 명암리에 자리 잡았다. 아들 중신(重臣)과 언신(彦臣) 등 2남1녀
를 두었으나 맏아들 중신은 일찍 세상을 떴고 차남 언신이 외아들 광필(光弼)을 두었는데 광필이 천립
(天立), 택립(擇立), 정립(貞立) 등 세 아들을 낳은 뒤부터 후손이 많이 퍼져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둘째 손홍복은 후손이 없고 셋째 아들 손홍조는 서산 대산에 가서 자리 잡았다가 손홍조의 손자 구
석(九錫)이 공주 유구 등지로 이주했고 이후 일부는 공주 정안이나 천안 풍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공주 유구에서 48세(世) 때 후손들이 송악면 수곡리와 신창면 신달리로 들어와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손길의 아버지 손여성 기적비-
-손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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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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