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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서원 입지환경과 주변의 관련 암각체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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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21)
둘째는 적어도 회암서원이 창건된 1709년을 감안하면 서원 건립
추진을한죽천김진규나봉림골한산이씨, 시동리한양조씨유생중
에서 황강거사의 학풍을 잇고자 새긴 것으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서인과남인이권력을뺏고빼앗기는숙종연간의환국정치(換局政
治)에환멸을느꼈던권상하는늦게까지벼슬에나가지않고학문연
마와 제자 교육에 전념했다. 그는 나이 35세 때인 1675년(숙종 1)에
청풍(淸風)의 황강(黃江: 지금의 충북 제천군 한수면 황강리) 옆으로
거처를옮겨은둔의삶을살았다. 그리고정통주자학자답게주자(朱
子)의시가운데“가을달이차가운물(寒水)에비추네(秋月照寒水)”라
는 구절을 빌어 자신의 호를 ‘한수재(寒水齋)’라고 하였다. 또한 황강
가에 거처한다고 해서 ‘황강거사(黃江居士)’라고도 하였기 때문이다.
회암서원 계곡바위에 새겨진 암각체 현황
암각체 명
조성 시기
비고
? 1709~1761년 사이
黃江
? 1896년 경
鳳軒
? 1710년 경
芝谷과 같은 바위체 상단부에 새겼
으며 세련감이 부족한 점으로 볼 때
天川年
? 미확인
지곡 이후에 옛 회암서원을 그리며
새긴 글자체로 보여짐
芝谷
? 1896년 鄭鳳朝로 추정
可山
? 미확인
?晦庵書院遺墟立碑記事?를 쓴
芝川
? 1896년
李鎬健
趙鍾灝의 친구
21) 1761년(영조 37) 스승 권상하의 문집을 교감하여 ?한수재집(寒水齋集)?을
편찬하고 서문을 작성할 때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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